인공지능 시대에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사이비 극우 매국노 새끼들...
인터넷에서 시끄럽게 떠들기에 함 봤다. 이미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 내용은 대충 짐작하던 거라 어렵진 않더라. 모르던 부분만 새로워서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 영화에는 거짓말도 섞여 있으니까. 박정희가 육영수를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육영수를 누가 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못 밝힐 걸? 여하튼 그 벌인지 5년 후에 박정희도 여자 끼고 술 마시다 총 맞고 간다.
- 2005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육영수와 문세광" 2부작 ☞ 이걸 먼저 보고 가면 쉬움
- 200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누가 육영수를 쏘았는가?" ☞ 이건 MBC 따라한 짝퉁 다큐
좌우 대립이란 게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의 권력 유지를 위한 쇼인 건지...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1. 영화의 시대적 배경 이해
- 1970.12.21 ~ 1973.12.03 제6대 정보부장 이후락
- 1971년
- 1971.04.27 제7대 대통령 선거 : 박정희 vs 김대중 = 부정 선거로 이김
- 1971.05.24 김대중 암살 시도 : 14톤 트럭 충돌 → 3명 사상, 김대중 부상 → 다리 절게 됨
- 1971.12.06 국가비상사태 선포 → 본격적인 폭력 독재 시작
- 1972년
- 1972.07.04 남북공동성명 : 자주적 통일 + 평화적 통일 + 민족 대단결 → 남북 독재 시작
- 1972.10.17 10월 유신 선포 : 계엄령 + 국회 해산 + 헌법 정지 = 종신 독재 선포 → 반대 운동
- 1973년
- 1973.08.08 김대중 납치 사건 : 일본에서 독재 반대 운동하던 김대중 납치
- 1973.08.13 바다에 수장 될 뻔하다 미국 도움으로 김대중 생환 → 한일 관계 극도로 악화
- 1973.10.02 서울대 문리대 시위 (유신 반대 운동의 탄생) : 대학생 반대 → 전국 확산 → 민청학련 사건
- 1973.10.19 유럽 간첩단 조작 목적 최종길 교수 고문 사망 → 2006년 법원 판결로 명예 회복(중정 감찰부 소속 막내 동생 최종선 폭로)
- 1973.11.02 김종필 국무 총리 방일 사과 → 김대중 납치 사건 마무리
- 1973.12.03 ~ 1976.12.04 제7대 정보부장 신직수
- 1973.12.24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장준하 등) : 지식인 반대 → 긴급조치 1호·2호
- 1974년
- 1974.04.03 민청학련 사건 및 긴급조치 4호 : 전국 대학생 반대 시위 민청학련 배후자 체포
- 1974.04.09 인혁당 재건위 사건 발표 : 민천학련 배후가 인혁당?
- 1974.08.15 문세광 사건 (8.15 저격) : 문세광도 독재자 박정희에 적대적인 건 사실
- 1974.08.21 박종규(피스톨 박) 경호실장 사임 → 차지철 경호실장 임명
- 1974.09.19 일본 특사의 사과문(항복문) 전달 → 김대중 납치 사건 진짜 마무리
- 1974.10.24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 → 전국 언론사로 확대 → 탄압/해고 → 조중동 망침
- 1974.12.17 문세광 사형 확정 : 아무도 못 죽였는데? 사망자는 육영수와 여고생 2명
- 1974.12.20 문세광 사형 집행 : 왜 이렇게 빨리? 사형 집행 전 "조총련에 속았다"는 유언?
- 1975년
- 1975.04.08 인혁당 사건 대법원 상고 기각 : 8명 사형 확정 선포
- 1975.04.09 인혁당 사형 집행 → 사법 살인으로 기록 → 나중에 무죄 판결 명예 회복하면 뭐해?
- 1975.08.17 장준하 추락사(두개골 타격 후 추락 위장한 암살)
- 1976년
- 1976.03.01 3·1 민주구국선언 (명동성당 사건) : 종교계 반대
- 1976.11.02 코리아게이트(박동선 사건) 보도 → 프레이저 청문회(1977~1978)
- 1976.12.04 ~ 1979.10.27 제8대 정보부장 김재규
- 1978년
- 1978.10.31 프레이저 보고서(박정희 비리 보고서) 제출(1977년 6월 김형욱 증언에 따라)
- 1979년
- 1979.05.30 신민당 총재에 김영삼 당선 : 선명 야당 vs 독재 정권
- 1979.08.11 YH 무역 사건 (김경숙 열사 사망) : 강제 진압 중 노동사 사망
- 1979.10.07 미국 망명 생활 중 프랑스 파리에서 김형욱 실종(중정 공작원이 암살)
- 1979.10.16 ~ 10.20 부마민주항쟁 : 차지철(진압) vs 김재규(민심) → 10.26 사건
- 1979.10.26 뭔가 깨달은 김재규가 박정희 & 차지철 총살
-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 재일 교포 중 좌익 친북 + 이승만 때 제주 4.3 학살 희생자들 (남한 정부에 원한)
-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 재일 교포 중 우익 친남
- 1950~1960년대 조총련 우세 : 남한 출신이 90%인데도 북한 정부 지원으로 우세 60~70% 이상
- 1970년대 이후 민단 우세 : 1965년 6월 22일 한일 수교 이후 남한 정부 지원으로 우세 → 약 70~80% 이상
2. 당시 정부의 문세광 사건 공식 발표 내용 : 7발 → 6발(발포)
- 문세광 1발 허벅지 오발
- 문세광 2발 연설대에 맞음 (방탄)
- 문세광 3발 불발 (소리 없음)
- 문세광 4발 육영수 맞음 → 법의학적 확인 한 적 없음 & 사격 방향 다름
- 문세광 5발 태극기 맞음
- 경호원 1발 어디로?
- 경호원 2발 어디로?
- 문세광이 조총련 간부 김호룡의 사주를 받고 저지른 짓 → 일본측 수사와 다름
3. 일본측 수사 결과
- 권총 2정 도난 사실 입증 (오사카에선 야쿠자 통해 총 구하기 쉽다며?)
- 문세광의 집에서 2정 중 1정과 실탄이 발견 (바다에 버렸다며?)
- 문세광의 단독 범행(단독범)으로 결론 (뭐라? 군대도 안 가 본 애가?)
- 한국 정부가 요구한 조총련 관련자(김호룡 등)에 대한 신병 인도나 강제 수사를 증거 부족 이유로 거부
4. 미국의 입장
- 내부 문서(CIA 및 주한 미 대사관 보고서)에서는 문세광이 북한 공작원/조총련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수사 경과를 기록 (미국도 남한 독재 정부의 거짓말은 익숙하니까)
- 미국 측은 비밀 전문에서 이번 사건이 박정희 정권이 연출한 애도가 아닌, "육 여사의 사망에 대한 국민적인 슬픔과 충격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평가 (육영수는 실제 인기가 좋았으니까)
- 한일 갈등을 중재하는 쪽으로 노력 (이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히니까)
5. 문세광의 말
- 수사 과정에서 공산주의를 신봉. 공산혁명을 이룩하려는 한 수단으로 여기 왔다고 함.
- 수사 과정에서 조총련 세력의 공작과 지시를 받아 범행을 모의했다고 자백 함.
- 재판 과정에서 "나는 육영수 여사를 겨냥하지 않았다"라고 진술 (이건 명백한 얘기고)
- 박 대통령과 육 여사에 대해서 미안
- 조총련 놈들에게 속았다 (실제 조총련으로 알고 있었단 건가?)
- 아내는 재혼하고, 2살 장남은 형님 부부에게 부탁, 부모형제에 사과, 아들과 처 사진 본 후 집행
6. 당시와 그 이후 사람들의 의혹
- 문세광 1탄 허벅지 오발
- 문세광 2탄 연설대 좌측 (박정희 방향)
- 문세광 3탄 불발? 태극기? (박정희 방향)
- 경호실장 권총 놓쳤다 다시 주워 앞으로 전진 (박정희 우측 뒤에 서 있었음)
- 문세광 4탄 육영수 쓰러짐 (방향이 전혀 안 맞음. 무대 좌측에서 우측으로 쏴야 맞음)
- 문세광 5탄 태극기? 천장? (천장은 방향이 안 맞음. 넘어지다 오발한 것?)
- 경호실장 6탄 문세광 쏘다 장봉화 쓰러짐 (이건 방향이 너무 안 맞음)
- 경호원 or 경호실장 1발 → 여학생 장봉화로 보는 듯 (피스톨 박이 엉뚱한 곳에 총을 쏴? 이상함)
- 누군가 1발 → 육영수 여사 → 탄두 못 찾음 (밝히기 싫은 걸로 보임. 쪽팔리나?)
- 문세광은 민단 산하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소속이나 독재자 박정희에 반감 → 누군가 포섭?
- 문세광 총 S&W(스미스 앤 웨슨) M36 .38구경 스페셜 짧은 총신 (숨기기 쉬우나 위력 약함)
- 경호원 총 S&W M10 / M36 / M19 등 .38구경 스페셜 (보통 총신) / .357 매그넘 (위력 강함)
- 문세광 총 38구경 리볼버 ≠ 육영수 여사 두부 상처 크기 (의료진 법의학자 의견)
- 문세광 본인 증언에서도 육영수를 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하였음.
7. 북한측 말
- 사건 당시 북한은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고 부인함 ☞ 74남북 성명까지 냈잖아
- 2002년 5월 박근혜에게 김정일이 직접 "통제불능 극단주의자들이 한" 1974년 문세광 사건(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과 특공대가 침투한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김신조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인정 - 일부 언론 및 일본 보도 ☞ 이건 뭐냐? 바보인가? 그럼 증거를 제시 해야지.
- 2002년 5월 방북 당시 회동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서전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이 사과한 사건은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김신조 사건)
8. 피해자들
- 문세광 : 한 명도 못 죽이고 사형 당함 (사법 살인에 해당함)
- 육영수 여사와 여학생 장봉화 : 둘 다 위치가 정말 이상함 (어디 있던 놈이 쏜 거야?)
- 일본 내 재일교포(민단·조총련 불문) 사회 전체가 심각한 감시와 탄압
- 현장 경호원 3명과 전담 경호관들이 즉각 경질 및 징계 파면
- 서울시경국장(치안본부장급), 현장 경찰 책임자, 국립극장 주변 경비 경감·경위급 간부들 직위 해제 및 경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