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4 수정 : AI 도움을 받아
우실하 교수 강의, 요하 문명, 순다 랜드, 하플로그룹, 역사 스페셜 등에서 고조선 검색해 볼 것
먼저 역사 상식
- 역사는 승자의 기록(소설/왜곡)이다.
- 현대 국가와 민족은 중세 때 혼혈 형성된 것이다.
- 고대사는 개껌이다. 아무리 씹어도 단물도 안 나오고 영양가도 없다. (자료부족)
- 현재(지배 권력)를 알아야 과거(역사 왜곡)와 미래를 안다.
- 현재를 알려면 가까운 과거(근현대사)를 알아야 한다.
- 고로 고대사보다는 근현대사가 더 중요하다.
- 유적 유물 발굴로 요하 문명 → 고조선 → 만주 + 반도(한국) + 열도(일본) 이동은 알 수 있다.
- 역사학계는 강단 사학계(일제 식민 사학) vs 재야 사학계(민족 주의 사학) vs 북한 사학계(사회 주의 사학계)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현재 경상도는 친일 친미 사대주의 매국노 꼴통 보수 독재 잔당 지지 지역이며, 경상도 학자 자기 스스로 경상도가 임나라고 주장한다. 가야가 일본에 진출한 것이니 경상도와 일본은 조상이 같다. 일본 극우(서부 끝)와 한국 극우(경상도)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 하지 않는다. 조상이 같기 때문에 뻔뻔하며, 몰양심, 몰상식, 몰염치, 부도덕하다?
1. 고조선의 존재와 위치 기록 - 고조선은 실존했고 위치도 대략 나온다
고조선이란 나라가 없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한중일 사서나 고서에 나오는 고조선 기록을 AI에게 물어 보았다.
1-1. 중국 기록
● 관자(管子) : 춘추전국시대 / 기원전 7세기경 추정"발조선(發朝鮮)이 문피(文皮, 호랑이 가죽)를 바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한국·중국 사료를 통틀어 '조선'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 제나라 교역 품목으로 조선의 특산물(표범 가죽 등)을 언급.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와의 교역을 다룬 기록으로, 고조선이 제나라와 교류할 수 있는 위치(요동/발해만 연안)에 인접해 있었음을 암시●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 전국시대~한대“동해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朝鮮)고조선의 대략적인 지리적 위치(발해만 일대~한반도 북부)를 명시한 대표적 구절.●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 : 기원전 1세기 / 사마천“조선왕 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동쪽으로 패수(浿水)를 건너 요동의 옛 요새에 진을 쳤다.”“패수(浿水)를 경계로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위만(衛滿)이 망명하여 패수(浿水)를 건너 서쪽의 진나라 옛 공지(空地)에 이르러 상하장(上下障)을 지키고,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연·제나라 망명자를 끌어 모아 왕이 되었다."고조선의 역사(위만조선, 한무제와의 전쟁)를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 기록. 고조선과 중국 왕조의 국경선이 '패수(浿水)'였음을 밝힘. 패수가 어디인지는 모름.●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위략 인용) : 3세기 / 진수"옛 조선후(朝鮮侯)가 연 나라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자 역시 왕을 칭하고 연을 내려치려 했다. ... 연이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 그 서쪽을 침략하여 땅 2천여 리를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로 삼았다."기원전 3세기경 전국시대 고조선이 중국 연나라와 대등하게 왕을 칭하며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고, 연나라의 침략으로 고조선 서쪽 영역이 2천여 리 축소되고 '만번한'이 새로운 국경선이 되었다는 중요한 기록. 만번한이 어디인지는 모름.●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낙랑 바다 가운데 왜인(倭人)이 있다. 나누어져 100여 개 국을 이루고 있으며, 세시(歲時)마다 와서 접견한다.”낙랑군(옛 고조선 땅) 주변 지리와 대외 정세를 다루며, 당시 왜국이 고조선 영역 또는 한사군을 통해 교류했음을 보여줌.
● 사기색은(史記索隱) : 당나라 / 사마貞
“응소(應邵)가 가로되, 요동군 험독현(險瀆縣)은 조선왕의 옛 도읍이다.”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王險城)'이 요동군 험독현에 위치해 있었다는 주석으로,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설(요동 ↔ 평양)을 연구할 때 핵심 사료.
● 사기정의(史記正義) : 당나라 / 장守節
“조선은 나라이름이다. 현토와 낙랑은 본래 조선의 땅이다.”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지역이 원래 고조선의 고유 영토였음을 지리적으로 분명히 밝혀주는 구절.
중국 기록은 고조선 당대 기록이다. 패수, 만번한, 요동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발해에 접해 있었다는 건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존재와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지리적 이치로는 하서 회랑(산해관)과 산동 ~ 요동 징검다리 해로를 장악해야 중원과 만주 무역을 중개할 수 있다. 산동은 동이라 불렸고, 요동과 무역 하기 좋은 위치이다. 이 시대 중국 국가 수도의 위치는 관중의 장안 아니면 낙양이었다. 요하 문명 지역이 고조선이 될 걸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 두 나라의 국경은 그 중간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도 옆에 국경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1-2. 한국 기록
● 삼국유사(三國遺事) : 1281년 / 일연“《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이라 불렀다.”
〈기이(紀異) 고조선(古朝鮮)〉 위만조선 조에서 《사기》를 인용하여 "서쪽으로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고 기록단군신화와 함께 '고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최초의 문헌. 중국 서적(위서, 고기 등)을 재인용하여 건국 설화를 보존. 일연은 사기를 인용하면서도, 각주(주석) 형태로 패수를 당시의 살수(청천강?)나 대동강 등으로 비정. 삼국사 고려사에는 고조선의 지명이 나오는 정도로 고조선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음. 패수, 살수, 대동강이 어디인지는 모름.● 제왕운기(帝王韻紀) : 1287년 / 이승휴“요금(堯今)과 같은 때에 처음 나라를 누리니, 요동에 별도의 천지가 생김이라... 이름하여 단군이라 하였다.”
"요동(遼東)에 별도의 세계가 있으니, 단군이 구월산에 들어갔다."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되었으며,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고조선의 정통 계보를 시 형식으로 정립. 고조선의 공간적 배경을 요동을 포함하는 범위로 인식하고 있음. 요동이 어디인지는 모름.●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 1454년“단군이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이라 칭하였다.”조선 초기 국가 차원에서 정리된 사서로, 단군조선이 구체적으로 평양/요동 지역을 수도로 삼았음을 명시.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비정조선 후기 실학자(한백겸, 신경준, 정약용 등)들은 고조선의 경계인 '패수'와 '만번한'을 입증하기 위해 고증을 거쳤으며, 대체로 패수를 압록강, 청천강, 혹은 요동의 어느 강으로 비정. 요동의 어느 강이 요하 외에 더 있나? 고조선 유적/유물은 연산 산맥, 북경까지 나옴. 연나라 유적/유물은 요동까지 나옴. 패수는 북경 근처 강일 것이고, 만번한은 아마도 압록강 근처 정도 될 거 같다.
한국 기록은 고조선 멸망 후 고려 시대부터 기록이다. 고구려, 백제는 지배층이 부여를 조상으로 밝힌다. 지명이 나오는 걸 봐선 고조선의 존재는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신라, 가야는 지배층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애들이다. 유적 유물을 통해 스키타이 흉노계 기마 민족이란 건 알 수 있다. 지배층이 고조선이나 부여계는 아닌 거 같다. 몽골 침입 이후 기록에 고조선을 뿌리로 기록하는 게 나온다. 몽골의 영향을 받은 걸까? 아니면 피지배층 주민들이 고조선 후손이란 걸 기억하고 있는 걸까?
1-3. 일본 기록
● 고사기(古事記) / 일본서기(日本書紀) : 8세기고조선이라는 국명이 직접 나오기보다는, 스사노오(素戈嗚尊) 신화 등에서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梨증시무리)'나 '조선(潮鮮)'에 관한 설화적 연관성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거론.
● 한원(翰苑) (7세기 일본 사서, 중국 사서 재인용)唐의 장초금(張楚金)이 집필하고 일본에 보존된 유서(類書)로, 고구려와 고조선의 옛 강역에 관해 《위략》, 《고구려기》 등을 인용하며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요수(遼水)에 접했다"**고 적고 있다. 요수가 어디인지는 모름.
일본도 지배층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남한에서 건너 간 걸로 보이긴 하고 일본 유물에서도 고조선 유물이 나오긴 하는데 한국의 신라/가야처럼 자기들 정체를 안 밝히니 알 길이 없다. 고조선 사람들이 건너 갔으나 일본의 지배층은 다른 계통이란 걸 알 수 있다. 철기 기마 문화가 들어오던 때였기 때문에 이 기술을 가진 몽골계나 서쪽에서 온 기마 민족이 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
동양은 원래 상의가 우임이었다. 깃과 섶이 우측에 있다. 좌임은 중앙 아시아 기마 유목민 복장이다. 고조선과 동이는 좌임이라고 했다. 중국은 조나라가 기마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처음 좌임을 도입한다. 3국 시대 되어서야 다시 동양은 우임으로 돌아간다. 좌임 우임은 기마 문화에 밀접한 관계가 없다는 걸 알았던 거 같다. 우임을 하고도 말을 잘 타고 활도 잘 쏘니까. 여하튼 좌임을 받아들였단 건 초원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위의 글을 요약하면? 고조선 영토 = 고구려 영토인데, 발해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 바다에 접해 있고, 서쪽은 강(패수)이 국경이고, 제나라(산동성 쪽)와 무역이 가능하고, 연나라(연산 산맥 쪽)와 접해 있어 전쟁을 했고, 수도가 장안/낙양인 한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 당시는 기후가 지금보다 높아서 한반도 남부는 열대 지방 비슷하고, 하북성 해안은 좀 더 안으로 들어 오고 평원은 습지가 많았고 산동 반도는 거의 섬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 황하의 위치도 지금과는 달랐다.
유물로 볼 때 요하 문명이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걸로 보이고, 비파형 동검이 시작 된 곳은 요하 지역으로 본다. 그래서 요녕식 동검이라 부른다. 요녕성의 중심에 요하가 있다. 서쪽 경계는 산해관이다. 동쪽 경계는 압록강이다. 좌측으론 연산 산맥과 북경 근처인 내몽골 적봉, 하북성 승덕, 당산, 노룡 등 난하까지 고조선 물건이 나온다. 그럼 난하가 패수일 가능성이 높겠지? 반대로 연나라 물건은 요동 압록강까지 나오고, 고조선이 한반도로 밀렸을 때는 평양과 전북에 세형 동검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그럼 만번한은 압록강일 수 있겠지?
명도전은 연나라 돈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한반도까지 명도전이 나온다. 명도전은 고조선 돈으로 보인다. 명도전 분포 지역 = 고조선 영역? = 연나라에 뺏긴 영역?
- 서쪽: 요녕성 조양, 능원, 내몽골 적봉
- 동쪽: 함경 남도 함흥, 영흥, 두만강
- 북쪽: 길림성(요녕성 위) 통화, 집안, 압록강 중상류
- 남쪽: 충남 아산, 공주, 전북 완주
- 중국 지역: 하북성, 베이징 일대, 내몽고자치구, 요령성(요동), 길림성 등
- 한반도 지역: 청천강 이북의 한반도 서북부 지역 (평안북도, 자강도, 평양 등)
검색한 결과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만주 남부 지역이다. 서쪽으론 연산 산맥까지, 동쪽으론 동해까지. 남쪽으론 한반도 북부, 하북성 북경 근처까지 가로로 좀 긴 형상이다.
2. 고조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서쪽 초원에서 청동기가 들어 오면서 시작
"총균쇠"란 책을 읽으면 나름 답이 나온다. 내용을 요약하면 문명이란 자연 환경이 만든 것이지 특정 인종, 민족, 종교가 우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수렵 채집을 해서 동식물에 대한 지식이 밝았던 신석기 시대에, 농업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2모작이 가능한 아시아 남부에서 시작 되어 점점 북상한다. 목축은 인간에게 순종하는 순한 동물이 있던 아시아 남부 초원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순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늑대와 개는 같은 종이지만 늑대가 보기에 개는 저능아에 속한다.)
농업 목축의 두 선의 교차점이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 지역이다. 아시아 대륙은 수평 방향으로 기후가 비슷해서 문명 전파가 쉬웠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는 북극권, 적도권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문명 전파가 느렸다는 것이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좁은 곳에서도 서로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들은 고립되어 있었는데 농업 목축이 퍼지면서 특정 언어, 특정 유전자, 특정 인종이 확산되어 어족(언어 족보), 유전자 족보, 인종, 민족이란 것이 형성된다.
고조선은 청동기 전차 시대 국가이다. 이 기술이 어디서 생겨 어디로 퍼졌는지 물어 보았다.
- 말의 가축화 (기원전 3,500년경 보타이 문화) : 야생마와 흡사, 어깨 높이 약 120~130cm 내외, 식량(고기, 젖) 목적, 아주 제한적인 탑승. 중앙아시아 북카자흐스탄의 초원 지대
- 고조선의 건국 (기원전 2333년) : 아마 서쪽의 청동기 문화를 동양에 가져온 사람들이 건국? 동양 청동기 도입 시기와 거의 일치. 위치는 주로 초원 접경 지대 여러 곳으로 고조선은 그 중 하나.
- 세이마-투르비노 (기원전 2100년~1700년경) : 알타이 근처 전차 + 청동 무기 전사 집단이 사방으로 확장, 유럽 중동 인도 북부 농민 학살, 전차 + 청동 무기 기술 전파
- 전차의 시대 (기원전 2,100년 ~ 1,500년경) : 청동기 시대의 정점. 중앙아시아 신타슈타(Sintashta) 문화에서 살이 있는 바퀴를 가진 전차가 발명. 우랄산맥 남부 동쪽의 유라시아 스텝 지역(카자흐스탄 북북서)
- 말의 지구력 개량 (기원전 2,000년경 전차 시대) : 체구는 작지만 지구력이 좋아짐, 전차(Chariot) 견인 (두 마리가 힘을 합쳐야 함)
- 청동기 시대 (기원전 2000년경): 전차 + 세이마-투르비노식 고성능 청동기. (이때 '현대적 합금 비율'의 기술이 사방으로 퍼짐) → 중국보다 고조선에 먼저 도달
- 전차 기마 과도기 (기원전 1500년~1200년경): 안드로노보 문화 등을 거치며 마구(재갈 등)가 정교해짐. 우랄 남부 ~ 알타이/천산/파미르 초원 지대
- 기마의 시대 (기원전 1,200년 ~ 900년경) : 말의 등 위에 직접 타는 기술이 보편화. 초기 철기 시대와 맞물리며 스키타이 같은 유목 제국이 등장. 중앙 아시아 초원
- 말의 체급 개량 (기원전 1,000년 ~ 800년경 기마 시대) : 어깨 높이 140~150cm 이상으로 개량, 직접 기마(Riding) 및 기마 전투 가능
-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1000년경 이후): 말의 품종 개량으로 직접 타는 기마가 가능해짐 + 철의 보급 + 철제 찰갑의 등장. (전차는 서서히 도태됨) → 고조선보다 중국에 먼저 도달
- 철기 주조 기술 개발 (기원전 202년 ~ 서기 220년 한나라) : 철기 대량 생산 시작
- 고조선의 멸망 (기원전 108년) → 북방 부여계(몽골계)에 의한 고구려, 백제, 신라 건국
보면 청동기를 먼저 받아서 극동의 문명을 이끌었을 걸로 추정 할 수 있다. 그러나 철기 기마가 늦게 들어 와서 망한 걸로 보인다. 그럼 청동기, 철기, 전차, 기마는 어디서 온 것일까? 주로 중앙 아시아 초원이다. 여긴 백인들의 영토였다.
전차, 기마는 사카 북부 초원 지역에서 백인들에 의해 시작 되었다.
최적 합금 비율 청동 무기는 그 동쪽 끝 알타이 산맥 근처에서 시작 되었다.
위 지도에서 사카라고 부르는 지역이 바로 그 지역이다. 여긴 부계 하플로그룹 R이 살던 땅이다. 스키타이, 마사게타이, 사르마트, 사카 다 같은 혈통의 백인인데 서로 싸우다 밀리고 밀려서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지역 동쪽과 북쪽 숲에 몽골계 사냥꾼들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통해서 청동기 전차 문화가 고조선에 전달 된다. 후대 철기와 기마도 이들을 통해 전달 된다. 고로 청동기 시대 때는 백인들이 동쪽으로 흘러들어왔을 걸로 보인다.
동양 역사에 처음 나오는 백인계 기마 민족이 월지(月氏), 곧이어 흉노가 나타난다. 외모는 황백 혼혈 또는 백인으로 묘사 되어 있다. 서쪽에선 스키타이가 처음 역사에 기록 된다. 그럼 청동기 시대 때는? 기록은 없지만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요하 문명 지역은 신석기 농경 문명이었고 고조선 시대는 사람들이 바뀐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국가이다. 이렇게 바뀐 사람들이 고조선 말기에 한반도로 내려 온다. 환국은 신석기 농경 국가? 환웅은 전차와 청동 무기를 퍼뜨린 세력? 고조선은 그 영향으로 탄생한 동쪽 끝 나라?
- 단군조선 : 약 2333+2000=4333년 전 동아시아 청동기 국가
- 아리아인 : 약 4000/4400년 전 확장 시작 (인도유럽어족 확장) ☞ 얘들이 주역
- 히타이트 : 약 3700년 전 건국 ~ 약 3180/2700년 전 멸망 (최초 철기 사용자)
- 바다민족 : 약 3200년 전(청동기 말기) 지중해 문명 파괴
- 스키타이 : 약 2700/2800년 전 역사 출현 (최초 기마 민족)
- 부처출현 : 약 2500년 전 인도 북부(석가족 = 사카족)
- 흉노출현 : 약 2200년 전 중국 서북 내몽골 초원
지도의 민족 위치는 믿지 말라. 역사 학자들도 하는 소리가 다 다르다. 그냥 그려 본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몽골을 거쳐 고조선에 청동기와 전차가 들어 왔다.
고조선이 연나라에 밀려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한반도 남부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 가게 된다.
한국사에선 역사 기록만 보지 지형 지도를 안 본다. 그래서 엉터리 위치가 많으니 학교에서 배운 것은 잊는 게 좋다. 지도에서 봐야 하는 건 산맥과 강이다. 보통 이것이 국경이 된다. 큰 강은 배 이동 수단이다. 큰 도시는 강 근처에 있다. 그리고 해안과 섬들이다. 이것이 해로가 된다. 옛날엔 멀리 배를 타고 나갈 수가 없었다. 땅이 보여야 길을 잃지 않았다. 길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중간에 도시들이 나타난다. 사막이라 하더라도 이런 도시들이 있어 실크로드가 되는 것이다. 전쟁은 이 길을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니 교과서의 엉터리 국경과 국가의 위치는 잊어라.
초원 유목민족의 배치 순서
- 서쪽 인도유럽어족 스키타이계 백인 혈통 → 몽골 침입 때 혼혈 → 현재 중앙 아시아
- 중간 튀르크어족 황백 혼혈 → 돌궐 서천 때 혼혈 → 몽골 칩입 때 혼혈 → 현재 중앙 아시아
- 동쪽 몽골어족 북방 사냥꾼 황인 혈통 → 고조선/고구려/북중국/만주와 접함
- 극동 퉁구스어족 만주 사냥꾼 혈통 → 한반도와 접함
중앙아시아 초원은 알타이 산맥, 천산 산맥, 파미르 고원, 곤륜산맥, 히말라야 산맥으로 동과 서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부의 카자흐스탄(투르크족)과 동부의 타림분지(위구르족)가 연결 되는데 여긴 유럽형 백인과 몽골인, 동양인(대표 중국 북방인/만주인)의 혼혈 지역이다. 아마도 오래 전에 스키타이계 백인(유럽형 백인)들이 기마 문화를 가지고 여기까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최초 서양 기마 민족(월지)은 중국 서부에 나타났다. 흉노는 몽고 서부 초원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동양인과 혼혈이 있었고 여러 기마 민족으로 분열된 것 같다.
알타이(Altai) = 튀르크어족 및 몽골어족에서 금(黃金) 또는 금빛 산을 뜻하는 고대 조어 형태인 *altañ이 뿌리인 걸로 추정튀르크·몽골어계: altan / altun (금, Golden)지명화 과정: altañ → altai (금빛의 것, 금으로 이루어진 장소)알타이 지역은 고대부터 금, 동, 철 등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한 광산 지대중국의 고서나 역사서에서도 알타이산맥을 직역하여 '금산(金山)'으로 표기
백과사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 수 있다.
- 청동기, 철기 모두 서쪽 아나톨리아 반도(터키 반도) 쪽이 가장 빠르다.
- 전차(마차), 기마(승마) 모두 서쪽 흑해 부근 ~ 카자흐스탄 초원이 가장 빠르다.
- 철기는 터키 반도의 히타이트(유럽형 백인)가 가장 먼저 사용했다.
- 기마는 서쪽 흑해 북쪽 초원의 스키타이(유럽형 백인)가 가장 먼저 했다.
- 청동기+전차, 철기+기마는 초원의 길을 따라 만주, 중국 서부에 도달한다.
- 동양에선 청동기는 만주(요하 문명 위치의 단군조선)가 가장 빠르다.
- 동양에선 기마는 흉노(몽고 초원 서부)가 가장 빠르다.
이 내용은 이런 기술들이 초원을 따라 몽골 동부와 만주 서부(동호), 중국 서부(관중, 황토 고원, 태행 산맥 서부)에 먼저 전해지고 산동(동이)에 나중에 퍼졌다는 얘기다. 동양에서 농업은 이상하게도 만주 → 중국 순서로 전해지는데 청동기도 만주 → 중국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민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인데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청동기 초반의 황제(관중)와 치우(만주)의 싸움이나 청동기 후반, 철기 초반의 위만조선과 중국 한나라의 싸움 같은 내용이다.
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 ~ 요(당나라) → 순(우나라) → 우(하나라 하후씨) ~ 탕(상나라)
요 임금 때 단군이 조선을 건국 한다
요/순/우는 성씨가 다르고 근거지가 다른 걸로 봐선 쿠데타 집권?
중국 역사 관련 방송들로 보건데 중국은 아마도 청동기 시대부터 북방에서 침략한 동이(고조선 포함)에게 시달린 것 같다. 이건 나중에 철기 시대 몽골(흉노/선비/돌궐/거란/몽골), 만주(고조선/고구려/대진국/여진) 지역에 시달린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 중국 기록을 보면 중국에 중국인은 없고 동이족만 나온다.
3. 고조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서쪽 초원에서 철기가 들어오고 한반도/일본으로 밀림
한반도는 중국 연나라에 밀린 고조선 세력 남하 시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시기에 일본도 반도의 도래인에 의한 야요이 시대가 된다. 일본 야요이 시대가 만주 → 반도 → 열도로 민족 이동이 있던 때이다. 즉 중국, 한국, 일본 모두 토종과 동이(청동기 세력)의 혼혈이다. 동양 문명은 중원의 동이족, 만주의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 일본으로 들어간다.
- 일본 조몬 시대(신석기) : 기원전 14000년 ~ 기원전 300년
- 연나라의 고조선 공격 :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초
- 일본 야요이 시대(농업) : 기원전 300년 ~ 서기 250년
- 부여 : 기원전 3세기 ~ 494년
- 위만조선 :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 신라 : 기원전 57년 ~ 서기 935년
- 고구려 : 기원전 37년 ~ 서기 668년
- 백제 : 기원전 18년 ~ 서기 660년
- 가야 : 42년 ~ 신라 시기와 비슷 (김수로와 석탈해가 전쟁 했다고 함)
고조선 말기 부여가 건국 되는 시점과 비슷한 때에 일본에 야요이인들이 도래한다. 이들은 요하 문명 지역에서 출발해서 열도로 들어갔다고 하니 당연히 반도를 거쳐 간 걸로 봐야 정상적 인간이다. 아마도 이 시기(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가 연나라가 고조선을 공격하던 때이니 맞아 떨어진다. 위만조선이 망한 후 한4군 시절에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가 건국을 하고 있다. 강단 사학이 일제 식민 사학을 따르다 보니 (일본 서기 임나 일본부와 엮여서) 가야사 뭉개기를 하고 있으나 신라와 거의 비슷한 때에 건국한다. 즉 고조선이 망하면서 민족 이동이 만주~반도~열도로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반도 남부와 열도가 청동기/철기로 들어간다. 그러니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하 문명 쪽이었을 걸로 보이고 한나라도 거길 공격했을 것이다. 이 요하 문명 쪽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세력이 연나라의 공격으로 만주 서남부 ~ 만주 동남부 요동 ~ 한반도 평양 쪽으로 동진, 남하하면서 남한은 신석기에서 청동기(세형동검)로 진화하고, 이후 일본도 조몬 신석기(수렵채집)에서 야요이 신석기(벼농사)와 청동기 철기가 동시에 들어가는 진화를 한다. 이 과정에서 만주 고조선계와 남한 동남아계 족보가 섞여 삼한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건너간 한반도 남부인(야요이)과 남중국 ~ 대만 ~ 필리핀 ~ 인도네시아 ~ 폴리네시아로 이동한 돛단배를 사용한 남중국계와 현대 일본인의 언어가 받침이 없는 언어 계통이고 교착어에 성조가 없단다. 매우 긴 활, 검은 이빨, 문신도 역시 이쪽 남방 문화이다. 고조선 시대는 남한은 열대 지방 비슷했다. 남한 토종과 일본 야요이는 유전자 족보도 같다.
- 연나라 공격으로 고조선 동진 남하 : 약 2300년 전
- 야요이 문화 : 약 2200년 전 ~ 약 1800년 전
- 위만 조선 : 2194년 전 ~ 2108년 전
- 금관가야(본가야) : AD 42년 ~ 532년 (562년 대가야 멸망)
- 고분시대(정복시대) : 약 AD 250년 ~ 약 700년 (큐슈 지역 → 야마토 지역 이동)
- 광개토왕 신라 구원 : AD 400년 (가야 주도권 이동 : 김해 금관가야 → 고령 대가야)
몽골족 유전자는 한중 모두 약 10% 정도로 비주류에 속하고, 일본은 거의 없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면 역사 시대 북방계가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주인공들이란 건 알겠는데 과연 우리도 고대에 그러했을까? 삼국 시대 이전에 우리도 북방인들의 지배를 받았다면 우리 중 10%가 그 후손이라 할 수 있겠다. 농업 민족은 온순한 편에 속하고 평소 전투 훈련을 잘 안 한다. 북방 수렵 민족이나 유목 민족은 약탈 문화권이라 사나운 편에 속하고 평소 생활이 전투 훈련이다. 삶이 말 타고, 야영하고, 활 쏘기 때문이지. 더구나 고대 전략 무기인 말이 아주 많은 곳이다. 신석기 농업 문화권인 요하 문명에 갑자기 청동기를 가지고 들어온 애들이 있다. 이 시대가 전설의 치우와 황제 시대이다. 어쩌면 고조선은 그 이전 농민을 정복한 유목민이 건국한 나라일 수도 있다.
유전자는 이주자/침입자/지배자와 원주민/피지배자가 섞인다. 피지배자 쪽이 수가 많아서 한국인은 중국 일본 유전자와 50% 겹친다. 반면 몽골 쪽과는 10% 정도만 겹친다. 그런데 언어는 지배자의 것을 따를까? 피지배자의 것을 따를까?
- 시노티베트/한장 어족 : 중국어, 티베트어, 미얀마어
- 오스트로아시아/남아시아 어족 :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 오스트로네시아/남섬 어족 : 필리핀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어(동일민족)
- 타이카다이/크라다이 어족 : 태국/라오스어(동일 민족)
유전자 족보는 모두 섞여 있으니 언어와 문화 차이만으로 민족 구분을 해야 하겠다. 한중일 모두 북방과 남방 족보 혼혈이다. 주로 북방계가 내려 와서 섞였다. 동남아 쪽은 남방계 족보가 강하다. 우리는 초원 쪽의 언어적 영향을 받았다. 중국 원주민은 고립어에 성조가 있는 언어를 쓰던 민족이다. 북방인이 들어와도 결국 인구 때문에 중국어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중국 남부인(남중국 원주민)이 밀려 이동해 간 것이 동남아 사람들이고 역시 성조가 있는 언어이다. 원래 동남아에 있던 원주민 크메르(캄보디아)는 오스트로아시아와 오스트로네시아가 반반 섞였는데 교착어 특징도 있다고 하고 성조도 없다. 받침도 일본어처럼 약한 것 같다. 한반도 남부 토종은 동남아와 같은 혈통이다. 그래서 추측인데 동양은 북방인, 남방인으로 나뉘었고 북방인은 시노티베트어족, 남방인은 오스트로아시아 +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었는데 초원에서 온 애들 영향 때문에 만주, 반도, 일본은 우랄알타이 어족과 비슷하게 바뀐 것 같다.
중국 원주민이라는 묘족은 북방인 족보임에도 고립어/성조어이다. 동이족의 언어가 중국어와 같은 족보였던 것인가? 묘(苗)는 밭 위에 풀을 의미하는 농업 민족이란 뜻이다. 지금 중국의 성조는 4개인데 원래 중국어 성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양자강 남동쪽 해안가 민족 언어와 동남아로 밀려난 언어들의 성조가 중국어보다 더 복잡하니 아마도 중국 토종의 말이 대체로 고립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염제(적제) 신농은 치우 시절의 동이족(묘족?)이고 상나라는 고조선 시절 동이족인데 이 동이족이 같은 동이족인가?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된 이후부터 동이족들이 중국에서 사라지니까. 결국 치우 시절의 동이(묘족)는 우리 조상도 아니고 현재 중국인 조상도 아니다. 황제와 치우가 싸우던 시절은 단군 조선 시대 이전이다. 전설 속의 단군 조선 초기는 전설 속의 중국 요순 시대이고 하나라 초기 시대이다.
동양인 족보는 거의 중국, 만주, 한국, 동남아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대부분이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가 없다고 하니까 원래 유목민들이 아니라 농경민이었단 말이다. 북쪽의 몽고족과 만주족은 원래 수렵 채집하던 민족이었을 것이다. 여기도 유당 분해 효소가 적다. 거긴 농사가 불가능하고 유목도 모르면 달리 살 방법 없다. 서쪽에서 백인 유목민들이 오면서 유목 문화와 접하며 초원에서 혼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렇게 동양의 기마 민족 흉노도 시작한 것이겠다. 흉노 이전에 유목민들이 왔을 것이고 흉노 외의 다른 유목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5호는 강, 저, 갈, 흉노, 선비(동호)니까. 중국엔 동양인 농민들이 있었고, 만주엔 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던 거 같은데 만주 서부, 중국 서부는 일찍 유목민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만주 서부의 동호/고조선 등이고, 중국 서부 고지대의 화하족 등이겠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원래 중국 토종은 성조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농업 민족이었다. 여기서 북부 고조선 지역과 서부 하나라 지역은 유목 문화와 일찍 접하는 접경 지역이었고 아마도 유목 민족이 이 지역을 통해 중원에 들어와 지배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하상주진한 시대는 고조선 시대인데 황제 치우가 싸우던 시대 후이니까 두 시대 동이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화하족 vs 동이족이 서부와 북부 출신 지배자들인 유목민들의 싸움인지, 아니면 서부 농경민과 동부 농경민의 싸움인지 모호하다. 여하튼 중국인은 원래 농경민족이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들의 언어는 살아남아 중국어로 이어진 걸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원주민은 아마도 동남아 사람들과 같은 혈통이었을 걸로 보인다. 언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방계 혈통은 유목민 침략 후에 자기들 언어를 잃었다.
중국인은 서부 유목민 강족, 흉노, 선비의 영향을 받은 화하족, 북부 몽골의 영향을 받은 만주족, 고조선, 동이족, 중국 토종 농민 동남아계나 묘족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후 역사 시대에도 서부, 북부 초원 출신 유목민 지배자들(5호 강, 저, 갈, 흉노, 선비 + 몽골 + 만주 거란, 여진)은 무수히 많이 들어와 혼혈이 된다. 그들의 언어와 풍습은 결국 중국에서 사라진다. 10% 수준의 비주류이니까. 선사 시대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동이족이란 유목민과 농경민이 만난 시대라 누구를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동이족이 중국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국 문명을 열었는데 정체가 뭐고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고, 서쪽 귀퉁이 작은 지역에서 출발한 화하족이 중국을 먹고 중국의 뿌리라 자청하는데, 얘들도 서부 유목민들이 들어오기 쉬운 위치라서 순수 중국 토종이라 보기 어렵다. 지금도 중국 서부가 몽골계 혼혈이 가장 많다.
중국 원주민이라는 묘족은 북방인 족보임에도 고립어/성조어이다. 동이족의 언어가 중국어와 같은 족보였던 것인가? 묘(苗)는 밭 위에 풀을 의미하는 농업 민족이란 뜻이다. 지금 중국의 성조는 4개인데 원래 중국어 성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양자강 남동쪽 해안가 민족 언어와 동남아로 밀려난 언어들의 성조가 중국어보다 더 복잡하니 아마도 중국 토종의 말이 대체로 고립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염제(적제) 신농은 치우 시절의 동이족(묘족?)이고 상나라는 고조선 시절 동이족인데 이 동이족이 같은 동이족인가?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된 이후부터 동이족들이 중국에서 사라지니까. 결국 치우 시절의 동이(묘족)는 우리 조상도 아니고 현재 중국인 조상도 아니다. 황제와 치우가 싸우던 시절은 단군 조선 시대 이전이다. 전설 속의 단군 조선 초기는 전설 속의 중국 요순 시대이고 하나라 초기 시대이다.
동양인 족보는 거의 중국, 만주, 한국, 동남아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대부분이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가 없다고 하니까 원래 유목민들이 아니라 농경민이었단 말이다. 북쪽의 몽고족과 만주족은 원래 수렵 채집하던 민족이었을 것이다. 여기도 유당 분해 효소가 적다. 거긴 농사가 불가능하고 유목도 모르면 달리 살 방법 없다. 서쪽에서 백인 유목민들이 오면서 유목 문화와 접하며 초원에서 혼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렇게 동양의 기마 민족 흉노도 시작한 것이겠다. 흉노 이전에 유목민들이 왔을 것이고 흉노 외의 다른 유목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5호는 강, 저, 갈, 흉노, 선비(동호)니까. 중국엔 동양인 농민들이 있었고, 만주엔 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던 거 같은데 만주 서부, 중국 서부는 일찍 유목민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만주 서부의 동호/고조선 등이고, 중국 서부 고지대의 화하족 등이겠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원래 중국 토종은 성조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농업 민족이었다. 여기서 북부 고조선 지역과 서부 하나라 지역은 유목 문화와 일찍 접하는 접경 지역이었고 아마도 유목 민족이 이 지역을 통해 중원에 들어와 지배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하상주진한 시대는 고조선 시대인데 황제 치우가 싸우던 시대 후이니까 두 시대 동이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화하족 vs 동이족이 서부와 북부 출신 지배자들인 유목민들의 싸움인지, 아니면 서부 농경민과 동부 농경민의 싸움인지 모호하다. 여하튼 중국인은 원래 농경민족이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들의 언어는 살아남아 중국어로 이어진 걸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원주민은 아마도 동남아 사람들과 같은 혈통이었을 걸로 보인다. 언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방계 혈통은 유목민 침략 후에 자기들 언어를 잃었다.
중국인은 서부 유목민 강족, 흉노, 선비의 영향을 받은 화하족, 북부 몽골의 영향을 받은 만주족, 고조선, 동이족, 중국 토종 농민 동남아계나 묘족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후 역사 시대에도 서부, 북부 초원 출신 유목민 지배자들(5호 강, 저, 갈, 흉노, 선비 + 몽골 + 만주 거란, 여진)은 무수히 많이 들어와 혼혈이 된다. 그들의 언어와 풍습은 결국 중국에서 사라진다. 10% 수준의 비주류이니까. 선사 시대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동이족이란 유목민과 농경민이 만난 시대라 누구를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동이족이 중국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국 문명을 열었는데 정체가 뭐고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고, 서쪽 귀퉁이 작은 지역에서 출발한 화하족이 중국을 먹고 중국의 뿌리라 자청하는데, 얘들도 서부 유목민들이 들어오기 쉬운 위치라서 순수 중국 토종이라 보기 어렵다. 지금도 중국 서부가 몽골계 혼혈이 가장 많다.
분명 중국 원주민은 한반도와 같은 신석기 시대 피정복민인 농경민일 것이고, 그들을 동이라 불렀다면 지금 한중일이 모두 동이족의 후예이다. 청동기가 들어오던 때나 (황제와 치우의 밥그릇 싸움 시기 ~ 고조선 건국 ~ 상나라 시기) 철기가 들어 오던 때 (춘추전국 시대 ~ 고조선 멸망 시기) 대륙 → 반도 → 열도로 인구 이동이 있었다. 중국도 북방 민족 침입으로 장강 이북 한족이 장강 이남으로 이주해 간 역사가 있다. 중국 남부엔 객가인이라고 중국인이면서 중국인과 분리된 이상한 애들이 있다. 일본에 들어간 신석기 농업민(야요이인)은 몽골계 혈통이 아니다. 고로 한반도의 몽골계 혈통은 이 시기 이후에 들어온 걸로 보인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동아시아는 원래 신석기 시대 농업민들이 주류였다가 청동기/철기 시대 소수의 초원 몽골계 혈통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서쪽에선 그것이 화하족인 것이고 동쪽에선 그것이 고조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둘(몽골계/만주계)이 중원 땅을 놓고 대립하는 게 중국 역사다. 지금은 몽골족이나 만조족도 중국/대륙/동이계 혼혈이 많다.
혈통은 섞였는데 언어와 문화만 다른 거지 뭐.
혈통은 섞였는데 언어와 문화만 다른 거지 뭐.
4. 우리의 먼 친척들?
치우의 후손 묘족은 동이(산둥, 장쑤, 안휘성 일대 및 요동)가 아닌 남만으로 불렀다.
- 몽미엔/몽메엔 어족 = 몽어(묘족) + 미엔/메엔어
- 방언에 따라 6~12개 성조
- 중국 남부(구이저우, 쓰촨, 윈난, 광시 등) 및 동남아시아 북부(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아무리 봐도 우리와 언어가 많이 다른데?
고구려 멸망 후에 중국 쪽 고구려인들은 중국에 붙고, 중앙 고구려인은 잡혀가고, 반도 고구려인은 통일 신라로 붙고, 만주 서부 고구려인은 몽골로 피난 가고, 동북 고구려인은 발해를 건국 했다. 이 중에서 몽골 초원으로 간 고구려인들을 케레이드(족장이 웅칸, 고구려의 일본 명칭이 고마=곰)라고 한단다. 몽골어 의미로는 케레이들이다. 몽고엔 여러 인종의 여러 부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케레이드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칭기즈칸(몽골 동부 출신)의 몽고 원정을 따라 서쪽 카자흐스탄으로 타타르족(몽고 서부)과 함께 이주를 해서 혼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케레이드와 타타르는 칭기즈칸과 싸운 경력이 있다. 그래서 몽골 땅을 버리고 떠난 거란다. 언어적으로는 우리와 달라졌을 것인데 그들 역사 기억으로는 자신들이 고구려와 관계있는 것으로 나온다. 카자흐스탄 유전자 족보를 비교하면 몽골계와 북중국/만주/한반도 북방계 족보가 섞여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이 한국인과 두개골의 특징이 비슷한 것도 설명이 된다.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단다.
- 고구려 = 고쿠리(음독) = 고마(훈독) = 곰
- 백제 = 쿠다라/구다라 = 커다란 : 백제도 웅진(곰나루), 부여(부여족)란 명칭 사용
- 신라 = 시라기
- 가야 = 가라쿠니 → 한국韓國 = 칸코쿠(음독) = 가라쿠니(훈독) : 한반도를 이렇게 부름
인터넷을 보니 멸망한 발해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아즈텍 문명(멕시코)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언어와 문화적 풍습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유전자 족보는 북중국, 만주, 한국계와 비슷해야 옳다. 조사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런데 지금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인디언 유전자 족보는 동양인보다는 유럽 백인들과 더 친척으로 나온다. 이누이트 계열도 몽골쪽에 더 가깝다. 현재 멕시코인은 스페인 남자 백인들과 혼혈이 되어 메스티조(혼혈아/잡종)라 부른다. 그런데 발해인 대부분은 고구려인이 아닌 말갈 사람들이다. 그리고 마야, 잉카 문명은 발해 이전에 이미 시작한 문명으로 나온다. 아즈텍은 북쪽에서 내려온 원주민이 마야 문명을 이어 받아 나중에 생긴다. 족보나 언어로 봐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유사한 문화적 흔적은 있다. 멕시코 부계 족보가 남아 있고 그게 몽골/만주계와 같은 혈통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 발해(698년~926년), 아즈텍(1200년경~)
만주가 몽고와 접하고 있고 몽고인과 같은 혈통이 북미의 이누이트(에스키모)이고, 북미 인디언 중에서 서부 쪽(멕시코 바로 위가 아파치족)은 얘들과 같은 뿌리이다. 그래서 같은 문화로 연결될 수는 있는데 멕시코는 너무 남쪽이잖아? 북미 서부 인디언 중에 일부가 멕시코로 남하했다면 모르지만, 그래도 혈통은 몽골계에 속하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아파치족 근처 서부 나바호족 언어는 영화 "윈드 토커"에서 보듯이 포합어라 암호와 비슷하다. 발해인들이 이런 원시적인 언어를 쓸 리가 없지 않나? 현재 만주인은 중국인들과 혼혈이라 원래 만주인이 몽골계 쪽에 가까운지 북중국, 한국인과 가까웠는지 알 수는 없다. 멕시코 남자들도 혼혈이라서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는지 북에서 내려온 몽골계 이누이트와 같은 혈통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들 모두 신석기 시대 이동을 한 걸로 보이는데 철기 시대 문자를 아는 발해 사람들이 이동했다면 포합어나 신석기 쓰고 있겠냐?
인터넷을 보니 유대인의 셈족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단군 부족이라는 주장이 있던데, 거의 종교 사기로 본다. 개독교 사이비 극우 애들이 퍼뜨리는 말로 보자.
신석기 → 청동기 → 철기 → 화기 시대 거치는 동안 민족이 안 바뀐 경우가 있던가? 현재 인류 부계 족보 대부분은 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에 원주민을 대체한 족보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계 족보는 화기 시대에 유럽 부계 족보로 대체 되었다. 그래도 엄마 따라 자신들이 원주민의 후예라고 한다.
- 삼국사기 1145년 (고조선, 가야, 동예, 옥저, 삼한, 발해는 고백신 3국과 관련된 기록만 나옴)
- 고몽전쟁 1231년~1257년
- 삼국유사 1281년 (고조선/단군 본격 등장)
- 임진왜란 1592년~1598년
- 정묘호란 1627년
- 병자호란 1636년~1637년
- 규원사화 1675년
- 일제강점 1910년~1945년
- 환단고기 1911년 (1979년 출판)
후손이 살기 위해 조상 족보도 팔고, 남의 조상 족보도 사는 일이 조선 후기에 있었는데, 중국의 동북 공정이나 한국/일본의 역사 왜곡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우리도 해방 후에 친일파들이 각계 각층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살려면 역사 왜곡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우리는 고조선, 발해, 가야를 밀어 내고 있고, 중국은 고조선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일본은 가야를 가지고 싶어 한다. 거란족, 만주족 부족은 자신들을 고구려, 신라의 후예라 자칭하기도 했으니, 정확히 자기 조상을 알고 역사를 아는 나라가 있기나 하겠는가? 그러니 무조건 우기기 하는 거잖아?
그런데 말이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북한의 김씨 세습 독재가 무너지고, 남한의 골빈 친일 독재 잔당이 멸망하며, 친일 극우 꼴통들이 깨달음을 얻어 개돼지에서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 너무 먼 과거는 안드로메다 얘기처럼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이 언제쯤 민주, 복지, 자유, 평등 국가가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 낙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까?
황당 고기 = 전승 + 소실 + 창작 = 유대 경전(구약)과 비슷
- 전승역사 = 다른 역사책을 베꼈기 때문에 증명 가능한 역사
- 소실역사 = 베낀 역사책이 사라져서 증명 불가능한 진짜 역사
- 창작역사 = 황당 고기 작가가 창작한 가짜 역사 또는 가설
- 전승신화 = 역사라고 하기엔 거리가 먼 종교 신화
황당 고기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며 위의 4개를 구분해 내는 것이다. 2번과 3번은 영원히 구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거기에 빠져 살 거냐? 어떻게 삼국유사나 규원사화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일제 시대 툭 튀어 나오냐? 그 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 진짜 황당고기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읽어 보자. 기록 중에 진짜도 있을 것이니까. 강단 사학에서 일본 서기를 참고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강단 사학에서 거짓말 한다는 걸 알고 충격 먹었다.
환단고기와 강단사학 둘 중에 뭘 믿어도 이상한 놈 되는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