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2일 금요일

영혼의 증거? 영혼은 존재 하는가?

우리가 빛을 볼 때 눈에선 3개의 색상(빨강, 초록, 파랑)을 감지하여 전기 신호로 두뇌에 보낸다. 두뇌는 3개의 전기 신호의 비율로 색상을 판단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알듯이 (아니 최소한 다른 놈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바로는) 나는 색을 3개의 숫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는 감각은 전기 신호도 숫자도 아니다.

이게 영혼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보다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더 맞는 말 같다. 그러면 생각은 인간만 하지만 느끼는 것은 동물들도 하니까 동물들도 영혼이 있는 것인가? 지적 능력이 육체가 아닌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지적 능력을 보이는 로봇에게도 영혼이 있는 것인가?

종교에선 영혼 = 의식 + 기억이라고 한다. 기억이 의식과 함께 한다. 그런데 과학에서는 영혼 = 기억이라고 한다. 기억을 복제하면 영혼도 복제한 것이란다. 마치 하드디스크에 옛날 데이터를 옮겨 놓은 새로운 컴퓨터는 자기가 옛날 컴퓨터였던 것처럼 동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졸도하거나 잠을 잘 때 우리 의식과 기억은 어디 있는가? 이렇게 자주 사라지는 것이 죽었을 때는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육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공중에서 비행할 수 있을까? 마약 먹고 그런 것을 느낀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객관적 증명은 불가능하다. 그 사람 혼자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귀신 봤다는 얘기랑 똑같다. 소문만 있지 귀신 본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내가 죽을 때까지 직접 귀신 볼 일도 없을 것이다. 임사체험이란 것도 죽다 살아난 사람 개인 환각이지 저 세상 보고 온 것은 아니니까 믿을 수는 없다.

복제인간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억만으로는 나라고 할 수 없다. 일본 애니 공각기동대, 미국 영화 the 6th day, 영화 솔라리스, 굽시니스트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기억을 복사하고 조작까지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의식까지 복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이 없는 갓난아기와 같은 의식을 나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의 정체성은 기억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까지는 같은 기억을 공유한 쌍둥이가 내 앞에 있어도 그는 그고 나는 나이다. 나의 의식은 이 육체에 있다. 복제 인간은 남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이 그라고 착각하며 사는 존재에 불과하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영생은 개소리다. 아무도 영생할 수 없다.)

갓난아기의 의식은 나라는 생각도 죽음도 인식하지 못 한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만 3살 이전까지는 자아 인식을 못 하고 인생 기억을 하지 못 하지만 분명 살아 움직이며 지능적인 행동을 보인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면서 의식과 기억은 없다. 아기는 영혼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님 로봇 같은 것인가?

의학 실험에 의하면 두뇌의 정면이 망가지면 살아 있어도 멍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의식이 없는 것이다. 이걸 보고 좀비가 되었다고 한다. 좌우측이 망가지면 살아 있어도 기억력을 잃는다. 말하자면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좌우측은 원래 감정을 담당한단다. 감정을 잃으면 기억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기억은 중앙 깊은 곳에서 담당한다. 기억은 동물 시절부터 있던 것이니 두뇌 표피에 있을 리가 없다. 두뇌의 좌우 중 하나를 없애도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어설프지만 정상 생활을 한다. 그러나 두뇌의 특정 부위가 망가지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도대체 영혼은 어디 있는가?

형이상학적 세계에 속하는 영혼이 형이하학적 세계에 속하는 마약, 술, 담배의 영향을 받고, 전자기적 자극에 귀신을 느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도 귀신같은 것을 새벽 꿈에 느낀다. 주로 온도가 내려가 싸늘한 신체 부위에 귀신이 접근한 느낌이랄까? 당신도 실험해 보라.) 두뇌의 특정 부위를 건드리면 신체적인 반응이 나오고 이상한 느낌을 느낀다. 우리 의식은 이 육체에서 오는 고통을 느끼는 불쌍한 존재이고 그런 것들의 기록이 기억이다. 의식이 기억보다 더 영혼 같다. 기억이란 것도 의식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다. 고통에 대한 기억이 고통을 준다.

영혼, 사후 세계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석기 시대 애니미즘, 문명 시대 인도 종교이다. 나머지 종교에선 원래 영혼이란 게 없었다. 서방 종교에서 유명한 영생과 분별과 얘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불멸의 영혼이 있다면 아담과 이브가 영생과를 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사탄이라던 뱀이 오히려 인간에게 영생을 주려고 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원형은 수메르 신화다. 수메르 신화를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불교의 경우도 무신론이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 무아론은 내가 없단 것인데 무엇이 윤회를 한다는 것인가? 불교에선 믿고 매달릴 절대적인 신을 얘기하지 않는다.


  • 수메르 종교 → 바빌론 → 아시리아 → 히타이트 → 그리스 → 로마 : 죽으면 끝이다.
  • 이집트 종교 →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 : 죽으면 끝이다. 영혼은 중세에 받아들임.
  • 동양의 도교 : 죽으면 혼백이 분리 되고 결국 둘 다 사라진다. 즉 끝이다.
  • 인도 베다교 → 브라만교 → 불교 → 힌두교 : 영혼불멸, 천국 지옥 포함한 윤회


결국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불멸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나의 신분 같은 것도 없다. 내 것이란 것은 남들이 내 것임을 인정해 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왕이란 것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줘서 왕인 것이다. 그들이 각성해서 나를 왕좌에서 끌어내고, 내 땅과 재산을 나눠 가지면 막을 방법이 없다.

예수, 부처는 좌파(진보)임을 명심해라. ㅋㅋㅋ

고대의 어느 스승 → 기타 등등 → 부처 → 예수 → 기타 등등 → 마르크스 → 당신



영혼설이 생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원래 세계는 야만스러웠다. 평화를 위해 야만인들이 스스로 법을 지키게 해야 했다. 법을 안 지키면 신이 죽음을 내린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비웃으며 그런 신은 없다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한 똑똑한 친구가 나타났다. 내가 죽으면 끝인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죽으면 이 세상도 신도 내겐 무의미하다. 우리 인간에겐 신보다 영생이 더 중요하다.

★ 유신론 (有神論)
① 세계 그 자체를 초월하여 존재하면서, 그것을 창조·유지·섭리하고 있는 인격적인 살아 있는 유일의 신을 믿는 입장. ※서양 종교적 관점
②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철학적·종교적인 사상. 
★ 무신론 (無神論)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상·종교상의 견해나 관점. ※과학적 관점 
★ 범신론 (汎神論)
자연과 신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의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은 곧 일체의 자연이라고 하는 종교관 또는 철학관. ※무신론과 다를 바가 없음
★ 이신론 (理神論)
계몽주의 시대에 성했던 종교적 견해. 세계의 근원으로서 세계와는 별도로 하나의 신을 인정하나, 이것을 세상일에 관여하거나 계시에 의해 자기를 나타내는 것과 같은 인격적 주재자로는 생각지 않고, 따라서 기적·계시의 존재를 부정함《계시 종교에 대한 이성 종교》. 자연신론. ※무신론과 다를 바가 없음

질서 유지를 위해선 신의 유무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게 영혼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무서운 죽음이 끝이 아니란 게 필요했다. 영혼이 있다면 영혼이 갈 곳도 필요하여 저세상이 만들어졌다. 상벌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만들어졌으나 무한히 영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상벌이 끝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오는 윤회(輪廻:바퀴가 돌다)가 필요했다.

★ 유심론 (唯心論)
우주의 본체를 정신적인 것으로 보며, 물질적인 현상도 정신적인 것의 발현으로 보는 이론. ※인도 종교적 관점 
★ 유물론 (唯物論)
우주 만물의 궁극적 실재를 물질로 보고, 정신적·관념적인 것을 모두 이에 환원시키려는 입장《무신론의 이론적 근거로 되어 있음》. 유물주의. ※과학적 관점 
★ 관념론 (觀念論)
인식론상의 한 입장. 우리가 인식하려는 세계는 외계 현상계가 아니라 영원불변한 관념 세계라고 하는 이론. 관념주의. ※인도 종교적 관점 
★ 실재론 (實在論)
의식이나 주관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른 인식의 기준으로 삼는 관점. ※과학적 관점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하는 자들도 있다. 이 무한 반복을 끝내는 해탈(解脫:풀어 벗다)이 필요했다. 그런데 해탈하면 어디로 가나? 또 다른 저세상 열반(涅槃)이 필요했다. 해탈하는 방법이 필요하니 불교 수행이 생겼다. 고집멸도(苦集滅道) : 집착을 버려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 그런데 수행을 통해 깨닫는 것은 무아(無我:나는 없다)이다. 그럼 도대체 뭐가 윤회를 하는가?

윤회하는 것은 나라고 인식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라는 인식 없는 기억이라는 것. 어제, 오늘, 내일의 나를 이어주는 것은 내 기억이라는 것. 의식은 잠을 자는 동안 사라지고 잠을 깰 때 나타난다. 영혼윤회와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야만인들의 행동교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누구로부터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연기론과 무아론을 통해 유물론자와 유심론자를 모두 만족시켰다. 연기론(緣起論) : 이 세상은 조건이 같다면 같은 결과가 재현 된다.

나라는 존재 또한 어떤 조건에 의해 이 세상에 나타난 결과. 그 조건이 언젠가 반복 된다면 나는 다시 부활하는 것인가?



먹이사슬 = 공생관계

풀 → 초식 동물 → 육식 동물 → 인간 → 신

풀(민초)이 죽으면, 초식 동물(부자)도 죽고, 육식 동물(정치인)도 죽게 된다. 하층민이 죽으면, 중산층이 죽고, 상류층도 죽고, 독재잔당도 죽게 된다. 세상 만물은 서로 공생관계임을 잊지 말라. 바닥이 튼튼해야 그 위에 있는 것들도 무사하다.

경제호황은 돈이 많이 돌아야 되고, 돈이 많이 돌려면 세상 사람들 주머니가 넉넉해야 되고, 주머니가 넉넉하려면 월급이 올라야 하고, 다른 말로 빈부격차를 줄여야 온단 말이다. 바닷물이 증발해서 구름이 되어야 비가 오고, 강과 호수에 물이 흘러야 풀도 잘 자라는 것 몰라? 이 물은 돌고 돈단 말이지. 이 물이 바로 돈이야.

그리고 법 좀 지키고 살아라. 남한 제1정당이란 것이 범법단체에 반민주세력이라는 것이 말이 되냐?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남의 정당을 해산시킬 수가 있냐? 너희들이 깡패냐? 이해는 한다. 모든 것은 부정선거로부터 시작되어 관심 돌리기 하는 것임을.

간단한 산수 문제다. 1명이 놀고먹을 때 이 1명을 지탱하려면 9명이 필요하다. 그럼 놀고먹는 피라미드 층이 5층(정치인, 성직자, 군경공무원)이 있을 때 몇 명이 있어야 이들을 지탱할 수 있을까? 1, 9, 90, 900, 9000, 90000... 그러니까 1만 명 먹여 살리려고 9만 명이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밥은 두뇌노동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씨발 나도 일 해야 하는데... 이놈의 술주정뱅이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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