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9일 월요일

요하문명 →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발해 → 어디로?


※ 우실하 교수 강의, 요하 문명, 순다 랜드, 하플로그룹, 역사 스페셜 등에서 고조선 검색해 볼 것


먼저
  1. 역사는 승자의 기록(소설/왜곡)이다.
  2. 현대 국가와 민족은 중세 때 혼혈 형성된 것이다.
  3. 고대사는 개껌이다. 아무리 씹어도 단물도 안 나오고 영양가도 없다. (자료부족)
  4. 현재(지배 권력)를 알아야 과거(역사 왜곡)와 미래(후손 세뇌)를 안다.
  5. 현재를 알려면 가까운 과거(근현대)를 알아야 한다.
  6. 고로 고대사보다는 근현대사가 더 중요하다.
  7. 유적 유물 발굴로 요하 문명 = 고조선 = 만주 + 반도(한국) + 열도(일본)
  8. 강단 사학은 고조선 인정하고, 재야 사학은 근현대사로 넘어가자.
그리고 현재 경상도는 친일 친미 사대주의 매국노 꼴통 보수 독재 잔당 지지 지역이며, 경상도 학자 자기 스스로 경상도가 임나라고 주장한다. 가야가 일본에 진출한 것이니 경상도와 일본은 조상이 같다. 일본 극우(서부)와 한국 극우(경상도)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 하지 않는다. 조상이 같기 때문에 뻔뻔하며, 몰양심, 몰상식, 몰염치, 부도덕하다.



하플로그룹은 유전자 족보를 말한다. 한국인은 족보로 보면 누구와 가까울 것 같은가? 한국인의 약 60%는 북방계(중국 북방, 만주, 몽고)와 형제고 40%는 남방계(중국 남방, 동남아,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 쪽과 형제인 혼혈 민족이다. 미국 유전자 비교 회사에 의뢰하면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나라는 50% 비슷한 일본으로 나온다. 그 다음이 중국이고 몽골은 약 10% 수준 비슷하다. 그래서 인종적 특징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섞인 중위도 몽골계이다. 그러니까 고조선 시대에 한반도 남부에 살던 애들은 남방계와 형제지간이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살던 애들은 북방계와 형제지간이다. 이상하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기 내용은 100% 믿지 말라.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이 섞여 있다. ㅋㅋㅋ 역사 학자들도 하는 소리가 다 다르다. 정답은 없다. 역사 쪽은 난잡해서 정리가 안 되어 머리가 어지럽다. 그냥 재미로 읽어라. 역사학계는 강단 사학계(일제 식민 사학) vs 재야 사학계(민족 주의 사학) vs 사회 주의 사학계로 나뉘어 있다.




"총균쇠"란 책을 읽으면 나름 답이 나온다. 내용을 요약하면 문명이란 자연 환경이 만든 것이지 특정 인종, 민족, 종교가 우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수렵 채집을 해서 동식물에 대한 지식이 밝았던 신석기 시대에, 농업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2모작이 가능한 아시아 남부에서 시작 되었고, 목축은 인간에게 순종하는 순한 동물이 있던 아시아 남부 초원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순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늑대와 개는 같은 종이지만 늑대가 보기에 개는 저능아에 속한다.)

농업 목축의 두 선의 교차점이 최초 문명인 수메르 문명 지역이다. 아시아 대륙은 수평 방향으로 기후가 비슷해서 문명 전파가 쉬웠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는 북극권, 적도권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문명 전파가 느렸다는 것이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좁은 곳에서도 서로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들은 고립되어 있었는데 농업 목축이 퍼지면서 특정 언어, 특정 유전자, 특정 인종이 확산되어 어족(언어 족보), 유전자 족보, 인종, 민족이란 것이 형성된다.


1. 문명은 서쪽 → 동쪽, 대륙 → 반도 → 섬으로 흐른다.




신석기 부분에 대해선 아직 문명을 언급하기 어려운 거 같다. 가장 빠른 쪽이 요하 문명 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명은 청동기 때부터라고 하자. 유럽 역사(그리스 역사)에 처음 나타난 기마 유목민이 스키타이다. 동방에 처음 나타난 기마 유목민도 백인(또는 혼혈?)로 보이는 월지(月氏)인데 곧이어 몽고 초원에서 동양계 기마 유목민인 흉노(匈奴)가 나타난다. 전차 청동기 문화, 기마 철기 문화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유럽형 백인계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그 중간에도 여러 기마 유목민들이 있었다.

스키타이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는 히타이트와 비교하면 몽골어에선 “~트/드”는 한국어 “~들” 영어 "~스" 복수 접미사라고 하고, 타이는 뭔지 모르나 공통으로 들어간다. 아마 "족"이란 뜻이겠다. 그러니 앞의 “스키”와 “힛”가 아마 종족 이름 같다. 성경에 기록된 헷 족속이 히타이트이다. 그러니 종족의 이름은 타이가 빠진 "힛" 부분이다. 이는 서쪽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백인 기마 유목민들이 동방에 오면서 우랄알타이어계 언어에 영향을 준 흔적이다.

  1. 단군조선 : 약 2333+2000=4333년 전 동아시아 청동기 국가
  2. 아리아인 : 약 4000/4400년 전 확장 시작 (인도유럽어족 확장)
  3. 히타이트 : 약 3700년 전 건국 ~ 약 3180/2700년 전 멸망 (최초 철기 사용자)
  4. 바다민족 : 약 3200년 전(청동기 말기) 지중해 문명 파괴
  5. 스키타이 : 약 2700/2800년 전 역사 출현 (최초 기마 민족)
  6. 부처출현 : 약 2500년 전 인도 북부(석가족=사카족?)
  7. 흉노출현 : 약 2200년 전 중국 서북 내몽골 초원

처음에 동유럽 러시아 초원에서 유목을 하던 아리아인이 확장한다. 서유럽으로 간 것이 유럽인, 터키 반도로 간 것은 히타이트, 이란 고원으로 간 것은 페르시아, 인도 북부까지 간 것은 브라만족, 중앙 아시아엔 스키타이 등이다. 바이킹, 게르만, 켈트는 아마도 유럽 원주민 혈통과 아리안계의 혼혈로 보인다. 아리안계는 아마도 파미르고원을 넘어 타림분지(신장자치구)까지 갔을 것이다. 이게 인도유럽어족의 확장이고 북유럽 계통 백인들의 확장이다. 원래 북극권 근처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그들의 흰 피부 때문이다. 비타민 D를 흡수하기 위해 탈색 돌연변이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는 농업 때문에 영양소 부족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난 전자가 맞는 얘기 같다. 흑인들은 중위도에 와서도 비타민 D 부족에 병이 걸렸다.

그러다 초원에 어떤 사건이 생겨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는데 그게 바다 민족의 이동으로 지중해 문명(그리스, 히타이트, 이집트 등)을 공격하여 거의 멸망시킨다. 이 사건 이후 기마 문화와 철기 문화가 나타난다. 아마도 기후 변동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최초 기마민족이 출현하여 압박을 가해서 흑해 근처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탈출하여 난민이 된 것이 아닐까? 게르만족 이동처럼 말이다. 이 사건 이후 스키타이가 초원에 나타나고 히타이트가 멸망 한 후에 철기가 퍼진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역사, 철학, 종교는 이 시기 이후에 나타난다. 여기서 바다 민족은 지중해 해안에 살던 여러 민족이란 얘기도 있다. 여하튼 얘들도 아리안계이다.

약 2500년 전 쯤에 인도 북부에 석가모니라는 자가 나타나는데 석가(사카) 족의 성자란 뜻이다.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이고 깨달은 자란 뜻의 부처라 불린다. 부처 탄생지를 검색하면 인도가 아닌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기슭(산 비탈 아래) 지역으로 지금의 네팔에 속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인도에서 부처 초상화를 보면 동양계 외모를 하고 있다. 약간 곱슬머리인 걸로 봐선 흑백황 혼혈이다. 이 사람이 사카족 출신이라면 사카족은 2500년 전 쯤에 중앙아시아에 있었단 얘기겠지. 이들처럼 혼혈 인종이 동방에 나타난 것이 흉노가 되는 거고. 중앙 아시아가 황백 혼혈이 된 건 기마 유목 시대 이후로 보인다. 전차 청동기 시절엔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지도의 민족 위치는 믿지 말라. 역사 학자들도 하는 소리가 다 다르다. 역사 기록만 보지 지형 지도를 안 본다. 그래서 엉터리 위치가 많으니 학교에서 배운 것은 잊는 게 좋다. 지도에서 봐야 하는 건 산맥과 강이다. 보통 이것이 국경이 된다. 강은 이동 수단이다. 큰 도시는 강 근처에 있다. 그리고 해안과 섬들이다. 이것이 해로가 된다. 옛날엔 멀리 배를 타고 나갈 수가 없었다. 땅이 보여야 길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이다. 길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중간에 도시들이 나타난다. 사막이라 하더라도 이런 도시들이 있어 실크로드가 되는 것이다. 전쟁은 이 길을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니 교과서의 엉터리 국경과 국가의 위치는 잊어라.

중앙아시아 초원은 알타이 산맥, 천산 산맥, 파미르 고원, 곤륜산맥, 히말라야 산맥으로 동과 서로 갈라진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부의 카자흐스탄(투르크족)과 동부의 타림분지(위구르족)가 연결 되는데 여긴 유럽형 백인과 몽고인, 동양인(대표 중국 북방인/만주인)의 혼혈 지역이다. 아마도 오래 전에 스키타이 백인(유럽형 백인)들이 기마 문화를 가지고 여기까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최초 서양 기마 민족(월지)은 중국 서부에 나타났다. 흉노는 몽고 서부 초원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동양인과 혼혈이 있었고 여러 기마 민족으로 분열된 것 같다. 백과사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 수 있다.

  • 청동기, 철기 모두 서쪽 아나톨리아 반도(터키 반도) 쪽이 가장 빠르다.
  • 전차(마차), 기마(승마) 모두 서쪽 흑해 부근 초원이 가장 빠르다.
  • 철기는 터키 반도의 히타이트(유럽형 백인?)가 가장 먼저 사용했다.
  • 기마는 서쪽 흑해 북쪽 초원의 스키타이(유럽형 백인?)가 가장 먼저 했다.
  • 청동기+전차, 철기+기마는 초원의 길을 따라 만주, 중국 서부에 도달한다.
  • 동양에선 청동기는 만주(아마도 요하 문명, 단군조선 쪽?)가 가장 빠르다.
  • 동양에선 기마는 흉노(몽고 초원 서부)가 가장 빠르다.

이 내용은 이런 기술들이 초원을 따라 몽골 동부와 만주 서부(동호), 중국 서부(하/주/진 나라 땅 관중)에 먼저 전해지고 중국(동이)에 나중에 퍼졌다는 얘기다. 동양에서 농업은 이상하게도 만주 → 중국 순서로 전해지는데 청동기, 철기도 만주 → 중국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민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인데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청동기 초반의 황제(관중)와 치우(만주?)의 싸움이나 청동기 후반, 철기 초반의 위만조선과 중국 한나라의 싸움 같은 내용이다. 동양의 문자는 상나라 때에 나타나고 (요임금 도성이라고 하는 게 관중 근처에서 발견 되었고 거기 문자가 더 빠르다) 이 문자로는 역사 기록을 하긴 어렵기 때문에 그 이전 황제와 치우의 전쟁은 입으로 전해진 전설이라 횡설수설이다.

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 ~ 요(당)→순(우)→우(하나라 하후씨) ~ 탕(상나라)
요 임금 때 단군 조선이 건국한다
요/순/우는 성씨가 다르고 근거지가 다른 걸로 봐선 쿠데타 집권?

중국 역사 관련 방송들로 보건데 중국은 아마도 청동기 시대부터 북방에서 침략한 동이족(고조선 포함)에게 시달린 것 같다. 이건 나중에 철기 시대 몽골(흉노/선비/돌궐/몽골), 만주(거란/여진) 지역에 시달린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 중국 기록을 보면 중국에 중국인은 없고 동이족만 나온다. 한반도는 중국에게 밀린 고조선 세력 남하 시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시기에 일본도 반도의 도래인에 의한 야요이 시대가 된다. 일본 야요이 시대가 만주 → 반도 → 열도로 민족 이동이 있던 때이다. 즉 중국, 한국, 일본 모두 토종과 동이족(청동기 세력)의 혼혈이다. 동양 문명은 중원의 동이족, 만주의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 일본으로 들어간다.


2. 한국인은 기마민족?


우린 우리가 기마민족과 관계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 왔는데 족보로 보면 우리와 상관없다. 중앙아시아 기마민족(카자흐스탄 + 기타 스탄 계열 국가, 위구르 신강자치구 등)은 유럽형 백인과 몽골계, 만주계 황인이 섞인 혼혈 민족이며 언어는 같은 알타이 어족에 속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민족이다. 단지 실크로드로 연결 되어 있어 기마 문화를 공유하고 언어적으로 유럽 굴절어(인도유럽어족, 아리안 이동으로 확장)동양 고립어(시노티베트어족, 진시 황제 통일로 확장)의 중간 정도 되는 초원 교착어(우랄알타이어족, 돌궐 서천으로 확장) 계통인데, 이건 문화적 영향에 의한 것이지 이들이 원래 하나의 순수 민족이란 의미는 아니다. 기마 민족은 혼혈 민족이다. (동양에선 몽골계가 투르크어 계통이나 서쪽 터키에선 서양인들이 투르크어 계통에 속한다)

고대 흉노의 언어와 족보는 알 수 없고 그 후의 돌궐(투르크, 터키)과 몽고의 서방 진출로 우랄알타이어족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퍼졌다. 흉노 시대 유골을 보면 흉노가 동양계 인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면 혼혈일 수도 있다. 돌궐과 몽고는 몽고 초원에서 발생한 국가로 동양계 인종이다. 우리의 경우 언어적 특징은 몽고/만주의 영향을 받았는데 족보로 보면 몽골계+만주계+중국계+동남아계와 같은 혈통이니 족보는 기마 민족과 다르나 문화적, 언어적 영향은 만주로부터 받았음을 의미한다. 그 시기는 아마도 청동기+전차 시대인 고조선 시대(고조선 이동 ~ 삼한 시대), 철기+기마 시대인 3국 시대 초기(3국 건국 시기)가 아닌가 한다.


3. 기마(유목) 민족의 종교와 신화


신석기 시대 종교로 보이는 것이 샤머니즘(무당), 애니미즘(정령), 토테미즘(동물)이 있는데 동물을 부족의 상징으로 삼는 게 토테미즘이다. 곰 부족, 범 부족, 늑대 부족 뭐 그런 거. 단군신화는 곰, 호랑이 토테미즘이다. 몽골은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이런 것은 동북방 수렵채집 문화권에 많다. 그리고 아메리카에도. 중앙아시아 초원 접경지대 문명권에는 모두 샤머니즘이 남아 있다. (세상에 무당이 없는 곳은 없다.) 무당이 유일신 종교로 발전 한 것 같다. 애니미즘은 모든 사물에 정령(영혼)이 있다는 생각으로 범신론, 영혼 불멸,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론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것은 남방 농업, 해양 문화권에 많다. 해양 문화권은 인도에서 한반도 남부까지이다.

천손 신화(예수의 처녀 잉태도 같은 종류)라고 하는 것은 초원 북방 유목 무당 문화권이다. 십자가도 원래 초원 유목민의 부족 상징이었다가 기독교 심벌이 된 것이라고 한다. 십자가는 기독교 이전에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그 중심은 초원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유대교, 기독교는 외부 여러 종교의 교리, 신화, 상징을 받아 조립한 것으로 보인다. 난생 신화(알 깨고 나옴)라고 하는 것은 해양 남방 문화권에 속한다. 가야와 신라의 신화는 이 둘이 섞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역시 한반도 남부는 동남아계가 살고 있었던 것인가? 한반도에서 초원 유목 문화 + 중국 농업 문화 + 남방 해양 문화가 만난 것인가? (의외로 한국의 구석기 신석기 문화는 동양에선 독보적이다)

이들은 알타이 신화도 공유하고 있는데 스토리는 비슷하나 지명과 인명이 다른 것을 보면 베낀 것이지 같은 민족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같다. 신들의 이름만 바뀌었다. 같은 민족이라면 같은 이름을 계속 이어갔을 것이다. 바이킹 게르만 신화는 철기+기마(승마) 시대 훈족과 접촉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 오딘의 까마귀(무당), 니벨룽겐 전설에 나오는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하는 지크프리트 왕자 등의 얘기다. 그 원형은 시구르드 전설이고, 원래는 흉노(훈족)의 전설로 보인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 자체가 훈족 시대이다.

중국, 한국, 일본 신화도 청동기+전차(마차), 철기+기마(승마) 시대 초원 민족과 접촉을 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까마귀 = 새 무당 = 조언자. 무당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고,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다. 중동의 수메르의 신화와도 영향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수메르 신화는 유대인이 창세기에 베꼈다. 바로 천지창조와 대홍수 이야기가 비슷하다. 성경의 대홍수 신화도 초원에서 건너간 것이다. 즉 초원 민족과 접한 곳에는 비슷한 신화가 남아 있다. (아니면 반대로 초원 사람들이 베껴 퍼뜨렸을 수도 있겠다.)

이 초원 지역에는 샤머니즘(무당종교)이 퍼져 있는데 유대교에도 영향을 줘서 야훼가 박수무당 모세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타는 나무는 나무/사슴 무당을 의미한다. (버섯 같은 약 을 빨아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동쪽 무당은 보통 검은 새(까마귀, 까치, 제비, 독수리 등)로 표현 되며 왕의 조언자나 날개 달린 천사(하늘의 사자)라고 보면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날개옷을 입었다. 서쪽은 나무 가지나 사슴뿔 모자이다. 신라 금관이 나무 가지나 사슴 뿔 모양인데 스키타이 문화라서 그렇다. 아마도 우주의 신호를 받는 안테나라 생각했던 것 같다. ㅋㅋㅋㅋ 요즘 기준으론 미친 사람? 몽골은 푸른 늑대(몽골 전사)와 하얀 사슴(백인 무당)의 결혼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무당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전달자란 의미이고, 유대 경전에선 예언자(미리 말하는 자), 선각자(먼저 깨달은 자), 선지자(먼저 안 자)가 모두 무당과 같은 것이다. 서쪽 무당으로는 사슴 뿔(나무 가지)로 표현 되는 모자(관)를 쓴 무당이 있는데 스키타이 ~ 흉노 ~ 신라 왕관으로 이어진다. 이는 신라의 지배층 김씨들이 흉노족임을 의미한다. 무덤의 유전자를 검사해 보니 스키타이와 신라 김씨 지배층(흉노 지배층)이 매우 비슷했다. 그렇다고 경상도 사람 모두가 흉노족은 아니니 한국인 족보를 보면 유목민들과 다른 것이다. 흉노의 족보는 스키타이와 또 다르다. 다민족/다인종 국가로 보인다. 처음엔 황백 혼혈이었을 것이다. 부계 하플로그룹을 보면 족보가 명확한데 애매모호하게 말 한다. 그냥 혼혈이라는 식으로.

무당 상징 : 새(전달자) + 사슴 뿔(안테나) + 나무(생명수)


4. 동양 문명의 시작


농업 문명 지역이라고 말하는 수메르(이라크), 이집트, 인더스(파키스탄), 겐지스(인도), 동남아 지역은 위도가 거의 같은 20~30도 사이 2~3모작 지대이다. (그런데 세계 최초라는 요하 문명, 장강 문명, 황하 문명은 이보다 위도가 매우 높다. 놀랍게도 신석기 농업 흔적도 한국이 동양에선 독보적이다. 세계 최초의 볍씨라니?) 농업 전파는 기후가 비슷한 곳으로 전파된다. 즉 수평으로 전파 된다. 동양에 오면 기후가 달라져서 밀, 보리 대신 벼로 바뀐다. 중국 북부와 남부, 한반도 북부와 남부는 기후가 달라서 농작물이 달랐다. 남부는 벼, 북부는 기장, 조, 수수 등이라고 하는데 (아메리카의 옥수수도 그런 종류) 주민들의 유전자 족보도 남북이 서로 달랐고 언어도 달랐다. 

밀과 보리는 서쪽에서 나중에 중국 북부에 들어온다. 한자를 보면 벼禾화가 먼저 생기고 기장黍서나 보리麥맥은 나중에 생긴 걸로 보인다. 밀은 소맥小麥이라 부른다. 중국 북부는 기장(좁쌀보다 약간 크고 노란 쌀) 농사, 남부는 벼 농사였다. 벼는 물이 많이 필요하고 논(늪/강변)에서 자란다. 한자로 논은 수전水田(물밭)인데 한국에선 논畓답으로 쓴다. 밀/보리는 물이 조금 필요하고 밭(강변/벌판)에서 자란다. 옥수수, 벼, 밀 모두 같은 종류의 강변에서 자라는 볏과 식물(화곡류)이다. 기후에 따라 식물을 달리 선택했지만 모두 강변에서 구할 수 있는 비슷한 모양의 식물이기 때문에 누군가 농업의 방법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전파 된 것이다. 어찌 하여 모두 볏과 식물이란 말인가?

동양 농업은 어디가 처음인지 모를 정도다. 가장 빠른 요하 문명은 너무 위도가 높다. 볍씨는 엉뚱하게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 되었다. 중원 문명도 동남아나 남방이 아닌 북방에서 시작한다. 이러니 뭐가 뭔지를 모를 정도다. 그러나 대규모 유적이 나오는 요하 문명은 사실이다. 북방으로 전해진 유목 문화와 청동기, 철기, 가축의 힘과 결합해서 북쪽의 농업이 더 발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동양 문명은 오히려 북(요하/황하)에서 남(강남)으로 퍼진다. 농사지을 때 소의 힘이 필요한 경우는 2가지다. 봄에 밭을 갈 때와 무거운 짐을 나를 때이다. 소의 힘이 있어야 대형 건축도 가능하다. 소와 말은 지금의 트랙터와 트럭 역할을 했다.

중국 전설에서 태호 복희는 신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냥+불 등의 얘기가 나온다. 고향은 관중 땅의 서쪽 하서회랑(황하 서쪽 복도) 羌강족의 땅이다. 염제 신농은 농업을 대표하는데 원래 중국에서 농업을 하던 종족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로 도망간 묘족(몽족)이라고 한다. 묘족의 묘(苗)는 벼의 모를 말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당시 동이(東夷)족은 묘족을 말하는 것이겠다. 이들이 스스로 치우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건 그들의 주장이다.) 염제 신농은 동이족이라고 했으니 묘족(당시 중국 동부인) 출신을 말하는 것이겠다. 태호 복희는 신석기 문화를 가져온 외부인인데 당시 관중(하/주/진 땅)으로 들어온 것 같다. 신석기 시대 동양인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순다랜드 전설에 따르면 빙하가 녹으면서 동남아에서 북상하여 중국 만주로 퍼진 게 극동 신석기인이다. 후자 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빙하가 녹을 때 중원 평야는 늪지대였다. 고로 동남아 ~ 상해 ~ 시안 ~ 황토고원 ~ 요하문명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동기 초기를 대표하는 황제 헌원은 청동기를 가지고 들어온 외부인이다. 황제도 동이족이라 하는데 청동기 시대 동이족이다. 그 위치는 지금의 중국 서부 관중(하/주/진 나라)이다. 청동기 초기에 중국 북부에서 서방의 침략자 황제와 동방의 원주민 치우(묘족이라 할 경우) 사이에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묘족이 도망을 갔으니 치우가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설의 기록은 책마다 횡설수설이라 믿을 수가 없다. 황토 고원에서 전쟁을 했다면 치우는 만주/몽골 쪽에 있어야 한다. (그 시대 중원은 평지가 아니었단다.) 또한 하나라/고조선 때보다 이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유물로 나온 중국의 청동기 시작은 상나라~주나라 때이다. 상주 교체기의 얘기는 역사 기록으로 나온다. 중국에 청동기가 없었는데 청동기로 전쟁을 했다고?

묘족(苗族)은 몽족(동남아 캄보디아)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토종 농업 민족이었다. 그런데 묘족은 우리와 유전자 족보도 약간 다르며 언어도 다르다. 묘족은 족보로 보면 동남아보다는 만주/중국 북부와 형제지간이다. 그러니까 묘족도 북방인이란 얘기다. 여하튼 같은 족보에서 갈라졌다. 동양인은 중국 서부/남부(!?)를 거쳐 동남아 남방계, 중원/만주 북방계로 갈라져 간 것이 순서인데 (순다랜드 이야기에 따르면 동남아에서 북상) 나중에 만주에서 다시 북방계가 내려 왔음을 알 수 있다. 묘족의 언어는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다. 우린 묘족보다는 현대 중국 북방인/만주인과 가까운 유전자다. 오래 전에 중국 북방인/만주와 묘족이 갈라진 것이다. 족보로 보면 동남아나 한반도 남부 사람들과 달리 북방계이다.

치우가 동이족, 고조선과 어떤 관계인지 명확하지 않다. 황제, 치우가 싸우던 때는 하나라, 고조선 이전 때고 거리가 멀다. 묘족의 치우 동이족은 중국 동부 해안(산동반도 등)을 말하고, 고조선은 만주 발해만에 접해 있었으니 위치가 서로 다르다. 서로 문물을 교류, 무역하던 관계였을 수도 있고, 상나라가 고조선에서 파생된 나라였을 수도 있겠다. (북경 근처 고죽국에서 상나라가 나온다.) 상나라의 기자가 고조선에 가서 왕이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지배자끼리는 서로 통했을 수도 있다. (기자 묘는 중국에 있다.) 묘족, 동이족, 중국 북방인과 한국인을 유전자 족보로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족이 갈라지기 전에 이미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황제와 치우의 싸움(동양 청동기 초반 외부인끼리의 싸움)이 있은 후에 전설 속의 요순 시대단군 시대에 해당하는데 중국 만주의 청동기는 실제론 이 시대 이후에 발견된다. 아마 청동기 막 들어왔을 때 싸움 같다. 이 시대는 역사 시대라기보다는 전설의 시대인데 중국 한나라와 싸우던 역사 시대 고조선은 이미 철기 기마 시대에 해당된다. 청동기 유물을 보면 중국보다는 만주 쪽이 더 빠른 것으로 나온다. 고조선(발해연안) ~ 상나라(중원 동이족) ~ 주나라(관중 화하족)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실제론 요동(또는 요서)의 고조선이 중원의 동이족에게 청동기를 알려 주고, 동이족이 서부의 화하족을 정복했던 것 같다. 다시 화하족이 동이족을 정복하면서 묘족이 남중국으로 도망간 것이고, 기자는 동이족 땅에서 죽은 것이다. 주나라, 진나라 때까지도 동이족은 중국 동부 지방 사람들을 말한다.

고조선을 상징하는 비파형 동검은 만주 서남쪽 북경 근처 요하 문명 지대(동호의 오환이 있던 곳? 거란족이 있던 곳)가 밀도가 높다. 그런데 이 지역의 스타일은 칼날은 고조선 스타일, 손잡이까지 통으로 주물하는 것은 중국 스타일, 손잡이 장식은 초원 스타일인 초원+만주+중원 짬뽕이다. 위치가 3곳을 모두 접한 곳이다. 몽골~만주, 만주~중원 통로가 여기 근처이다. 고조선과 함께 중국과 싸운 예맥, 숙신 등은 만주 동부 쪽의 동맹 수렵 부족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조선의 시작은 만주 서남부, 북경 근처, 산해관 근처였을 것이다. 거긴 만주, 초원, 중원이 만나는 지점이다. 지금의 북경 동쪽 산해관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중원과 만주를 갈라놓는 좁은 지역이다. 고조선이 중개무역으로 유명한 것을 보면 이 통로를 장악했다는 말이다.

만주 ~ 중국 무역로 : 산해관(육로), 요동 → 산동(해로)
만주 ~ 몽골 무역로 : 대흥안령 산맥 남쪽 요하 문명 쪽



나중에 알고 보니 동아시아 역사계가 많이 갈라져 있다. 중국, 일본, 북한, 남한이 서로 다른 소리(역사 왜곡)를 하는데 남한은 또 재야계(민족계)와 강단계(친일계)로 갈린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단 사학 것이니 일제 식민 사관에 따른 것이다. 위의 한반도 쪽 그림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따랐다. 일본 쪽은 새로운 역사 연구 내용을 따랐다. 멸망 할 때의 고조선의 위치는 식민 사학에선 평양, 민족 사학에선 북경 근처, 북한에선 요동 반도 요하 하류 근처라 한다. 내 생각엔 민족 사학 쪽이 더 그럴 듯하다. 고로 위만 조선은 북경 근처로 옮기고, 한반도 세형 동검은 마한 것이라 해야 옳겠다. 단군 조선이 기자 조선에 밀려 먼저 반도로 오고, (그런데 기자 무덤은 중원에 있다) 기자 조선이 위만 조선에 밀려 그 다음에 오고, (고조선 마지막 왕 기준은 성이 기씨가 아니라 한다) 위만 조선이 멸망한 후에 한 4군이 생긴다. 그게 북경 근처다. 모두 같은 위치에 수도가 있었다.

  • 일본 조몬 시대(신석기) : 기원전 14000년 ~ 기원전 300년
  • 연나라의 고조선 공격 : 기원전 4세기 말 ~ 3세기 초
  • 일본 야요이 시대(농업) : 기원전 300년 ~ 서기 250년
  • 부여 : 기원전 3세기 ~ 494년
  • 위만조선 :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 신라 : 기원전 57년 ~ 서기 935년
  • 고구려 : 기원전 37년 ~ 서기 668년
  • 백제 : 기원전 18년 ~ 서기 660년
  • 가야 : 42년 ~ 신라 시기와 비슷 (김수로와 석탈해가 전쟁 했다고 함)

고조선 말기 부여가 건국 되는 시점과 비슷한 때에 일본에 야요이인들이 도래한다. 이들은 요하 문명 지역에서 출발해서 열도로 들어갔다고 하니 당연히 반도를 거쳐 간 걸로 봐야 정상적 인간이다. 아마도 이 시기(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가 연나라가 고조선을 공격하던 때이니 맞아 떨어진다. 위만조선이 망한 후 한4군 시절에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가 건국을 하고 있다. 강단 사학이 일제 식민 사학을 따르다 보니 (일본 서기 임나 일본부와 엮여서) 가야사 뭉개기를 하고 있으나 신라와 거의 비슷한 때에 건국한다. 즉 고조선이 망하면서 민족 이동이 만주~반도~열도로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반도 남부와 열도가 청동기 철기로 들어간다. 그러니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하 문명 쪽이었을 걸로 보이고 한나라도 거길 공격했을 것이다. 이 요하 문명 쪽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세력이 흉노와 연나라, 한나라의 공격으로 북경 근처(고조선) ~ 만주 동남부 요동 발해만 ~ 한반도 평양(마한?) 쪽으로 동진, 남하하면서 남한은 신석기에서 청동기(세형동검)로 진화하고, 이후 일본도 조몬 신석기(수렵채집)에서 야요이 신석기(벼농사)와 청동기 철기가 동시에 들어가는 진화를 한다. 이 과정에서 만주 고조선계와 남한 동남아계 족보가 섞여 삼한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건너간 한반도 남부인(야요이)과 남중국~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폴리네시아로 이동한 돛단배를 사용한 동남아계와 현대 일본인의 언어가 받침이 없는 언어 계통이고 교착어에 성조가 없단다. 남한 토종과 일본 야요이는 유전자 족보도 같다. 헌데 받침이 부족한 쪽은 북방과 중국어이고 남방계는 한국어처럼 받침이 풍부하다.

  1. 연나라 공격으로 고조선 동진 남하 : 약 2300년 전
  2. 야요이 문화 : 약 2200년 전 ~ 약 1800년 전
  3. 위만 조선 : 2194년 전 ~ 2108년 전
  4. 금관가야(본가야) : AD 42년 ~ 532년 (562년 대가야 멸망)
  5. 고분시대(정복시대) : 약 AD 250년 ~ 약 700년 (큐슈 지역 → 야마토 지역 이동)
  6. 광개토왕 신라 구원 : AD 400년 (가야 주도권 이동 : 김해 금관가야 → 고령 대가야)
  7. 마한/왜(호남지역) : 옹관묘(난생신화) + 장고형/전방후원분(일본 고분시대 무덤)

내 생각인데 초원 접경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초원 민족(아마도 처음엔 백인 혼혈)과 접촉하면서 문명화 되는데 북쪽에 있는 몽고 동부 ~ 만주 서부 애들은 동호(선비/오환)가 되고 근처의 만주 서부 애들은 고조선이 된 것이고, 서부 강족과 북부 남흉노와 접한 중국 내륙 서쪽에 있는 애들은 화하족(하/주/진 나라 등)이 된 것이다. 지도를 보면 녹색 산맥으로 초원, 중원, 만주가 구분 되는 게 보일 것이다. 이 중국 서쪽(하/주/진) 애들이 중국 동쪽 원주민인 동이족/묘족(몽족)과 섞이면서 중국인이 된 것이고, 몽고 동부 ~ 만주 서부의 동호는 몽고인과 중국인에 섞이고, 만주 남부의 고조선은 동부 예맥/숙신 등과 섞여 만주인이 되고, 반도로 내려와 섞이며 한국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어 반도인이 일본에 건너 가니 중국, 만주, 한국, 일본은 서로 50% 정도가 혈통이 같고 언어와 문화만 다른 것으로 나온다.

몽골족 유전자는 한중 모두 약 10% 정도로 비주류에 속하고, 일본은 거의 없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면 역사 시대 북방계가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주인공들이란 건 알겠는데 과연 우리도 고대 이전에 그러했을까? 삼국 시대 이전에 우리도 북방인들의 지배를 받았다면 우리 중 10%가 그 후손이라 할 수 있겠다. 농업 민족은 온순한 편에 속하고 평소 전투 훈련을 잘 안 한다. 북방 수렵 민족이나 유목 민족은 약탈 문화권이라 사나운 편에 속하고 평소 생활이 전투 훈련이다. 삶이 말 타고, 야영하고, 활 쏘기 때문이지. 더구나 고대 전략 무기인 말이 아주 많은 곳이다. 신석기 농업 문화권인 요하 문명에 갑자기 청동기를 가지고 들어온 애들이 있다. 이 시대가 전설의 치우와 황제 시대이다. 어쩌면 고조선은 그 이전 농업민을 정복한 유목민들이 건국한 나라일 수도 있다.



유전자 족보는 모두 섞여 있으니 언어와 문화 차이만으로 민족 구분을 해야 하겠다. 한중일 모두 북방과 남방 족보 혼혈이다. 주로 북방계가 내려 와서 섞였다. 동남아 쪽은 남방계 족보가 강하다. 우리는 초원 쪽의 언어적 영향을 받았다. 중국 원주민은 아무리 봐도 고립어에 성조가 있는 언어를 쓰던 민족이다. 북방인이 들어와도 결국 인구 때문에 중국어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중국 남부인(중국 원주민?)이 밀려 이동해 간 것이 동남아 사람들이고 역시 성조가 있는 언어이다. 원래 동남아에 있던 원주민 크메르(캄보디아)는 반반 섞였는데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었던 것 같다. 교착어 특징도 있다고 하고, 성조도 없다. 받침도 일본어처럼 약한 것 같다. 이들이 동남아 반도에서 섬으로 밀려 내려간 것이다. 한반도 남부 토종은 동남아와 같은 혈통이다. 그래서 추측인데 동양은 북방인, 남방인으로 나뉘었고 북방인은 시노티베트어족, 남방인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었는데 초원에서 온 애들 영향 때문에 만주 반도 일본은 우랄알타이어족으로 바뀐 것 같다.

중국 원주민이라는 묘족은 북방인 족보임에도 고립어/성조어이다. 동이족의 언어가 중국어와 같은 족보였던 것인가? 묘(苗)는 밭 위에 풀을 의미하는 농업 민족이란 뜻이다. 지금 중국의 성조는 4개인데 원래 중국어 성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양자강 남동쪽 해안가 민족 언어와 동남아로 밀려난 언어들의 성조가 중국어보다 더 복잡하니 아마도 중국 토종의 말이 대체로 고립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염제(적제) 신농은 치우 시절의 동이족(묘족?)이고 상나라는 고조선 시절 동이족인데 이 동이족이 같은 동이족인가?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된 이후부터 동이족들이 중국에서 사라지니까. 결국 치우 시절의 동이(묘족)는 우리 조상도 아니고 현재 중국인 조상도 아니다. 황제와 치우가 싸우던 시절은 단군 조선 시대 이전이다. 전설 속의 단군 조선 초기는 전설 속의 중국 요순 시대이고 하나라 초기 시대이다.

동양인 족보는 거의 중국, 만주, 한국, 동남아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대부분이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가 없다고 하니까 원래 유목민들이 아니라 농경민이었단 말이다. 북쪽의 몽고족과 만주족은 원래 수렵 채집하던 민족이었을 것이다. 거긴 농사가 불가능하고 유목도 모르면 달리 살 방법 없다. 서쪽에서 백인 유목민들이 오면서 유목 문화와 접하며 초원에서 혼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렇게 동양의 기마민족 흉노도 시작한 것이겠다. 흉노 이전에 유목민들이 왔을 것이고 흉노 외의 다른 유목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5호는 강, 저, 갈, 흉노, 선비(동호)니까. 중국엔 동양인 농민들이 있었고, 만주엔 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던 거 같은데 만주 서부, 중국 서부는 일찍 유목민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만주 서부의 동호/고조선 등이고, 중국 서부 고지대의 화하족 등이겠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원래 중국 토종은 성조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농업 민족이었다. 여기서 북부 고조선 지역과 서부 하나라 지역은 유목 문화와 일찍 접하는 접경 지역이었고 아마도 유목 민족이 이 지역을 통해 중원에 들어와 지배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하상주진한 시대는 고조선 시대인데 황제 치우가 싸우던 시대 후이니까 두 시대 동이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화하족 vs 동이족이 서부와 북부 출신 지배자들인 유목민들의 싸움인지, 아니면 서부 농경민과 동부 농경민의 싸움인지 모호하다. 여하튼 중국인은 원래 농경민족이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들의 언어는 살아남아 중국어로 이어진 걸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원주민은 아마도 동남아 사람들과 같은 혈통이었을 걸로 보인다. 언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방계 혈통은 침략 후에 자기들 언어를 잃었다.

중국인은 서부 유목민 강족, 흉노의 영향을 받은 화하족, 북부 몽골의 영향을 받은 만주계 동이족, 중국 토종 농민 동남아계나 묘족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후 역사 시대에도 서부, 북부 초원 출신 유목민 지배자들(5호 강, 저, 갈, 흉노, 선비 + 몽골 + 만주 거란, 여진)은 무수히 많이 들어와 혼혈이 된다. 그들의 언어와 풍습은 결국 중국에서 사라진다. 10% 수준의 비주류이니까. 선사 시대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동이족이란 유목민과 농경민이 만난 시대라 누구를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동이족이 중국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국 문명을 열었는데 정체가 뭐고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고, 서쪽 귀퉁이 작은 지역에서 출발한 화하족이 중국을 먹고 중국의 뿌리라 자청하는데, 얘들도 서부 유목민들이 들어오기 쉬운 위치라서 순수 중국 토종이라 보기 어렵다. 지금도 중국 서부가 몽골계 혼혈이 가장 많다.

분명 중국 원주민은 한반도와 같은 신석기 시대 피정복민인 농경민일 것이고, 그들을 동이라 불렀다면 지금 한중일이 모두 동이족의 후예이다. 청동기가 들어오던 때나 (황제와 치우의 밥그릇 싸움 시기 ~ 고조선 건국 ~ 상나라 시기) 철기가 들어 오던 때 (춘추전국 시대 ~ 고조선 멸망 시기) 대륙 → 반도 → 열도로 인구 이동이 있었다. 중국도 북방 민족 침입으로 장강 이북 한족이 장강 이남으로 이주해 간 역사가 있다. 일본에 들어간 신석기 농업민(야요이인)은 몽골계 혈통이 아니다. 고로 한반도의 몽골계 혈통은 이 시기 이후에 들어온 걸로 보인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동아시아는 원래 신석기 시대 농업민들이 주류였다가 청동기/철기 시대 소수의 초원 몽골계 혈통의 지배를 받게 된다. 서쪽에선 그것이 화하족인 것이고 동쪽에선 그것이 고조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둘(몽골계/만주계)이 중원 땅을 놓고 대립하는 게 중국 역사다.

이렇게 추측해 보는 거지 뭐.


5. 한국 일본의 시작


한국 고대사를 배우면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청동기 시대 고조선과 반도의 삼한, 철기 시대 부여/고구려/백제와 신라/가야가 마치 다른 민족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우리보다 중국이 더 많으며, 부여~고구려~백제의 왕족들은 자신들이 고조선에서 나왔다고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북쪽 탁리국이란 엉뚱한 곳에서 시작한다. 중국과 접해서 중국인들이 인식하던 동이족, 고조선과는 먼 쪽이고 아마도 흉노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동호 계열일 것이다. 더구나 신라와 가야는 부여, 고구려, 백제와도 다른 종족으로 보인다. 신라 김씨는 흉노계라고 하니 왕실의 족보가 고조선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허나 서방 혈통(스키타이 계통)의 김씨 남자(성골)는 단종 되어서 남아 있지 않다. 당시는 민족 개념이 없고 도시 규모의 소국이나 부족 국가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에 북방계(부여/고조선/옥저/동예), 마한(한반도), 진한/변한(영남)이 서로 다른 민족이었을 것이다. 유전자 족보도 다른 게 섞여 있고, 언어도 달랐을 거니까. (진한은 마한과 말이 안 통했다고 하고 진한은 진나라 사람이란 얘기도 있다.)

고조선은 발해에 접해 있고 만주, 한반도, 중국 무역을 중개했다고 하니 무역로를 장악하려면 만주 남서부(요서 산해관 근처 + 요동 반도/산동 반도)가 영역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바에 따라 주나라의 공격으로 기자가 고조선의 왕이 된다. (그런데 기자 무덤은 중국에 있지) 연나라 공격으로 평양지역(마한 아냐?)으로 내려온 것으로 보이고, 여기서 연나라 사람 위만이 다시 고조선 왕이 되는데 어느 위치 고조선인가? 북경 근처인가 북한 평양인가? 재야 사학에 따르면 북경 근처로 보인다. 단군/기자/위만 조선 모두 북경 근처가 수도로 보인다. 거기에 낙랑군을 설치했다고 하니까. 거기가 마지막 수도인 것이다. 그럼 고구려 마지막 수도도 거기란 얘기인데? 평양은 대국의 수도라 하기엔 너무 좁지 않나? 하지만 로마도 작은 도시(여의도 수준)였어. 경상도 작은 경주가 반도를 통일했잖아?

철기 기마 계통은 스키타이 ~ 몽고의 흉노를 포함한 유목민들 ~ 요서의 동호(북부 선비, 남부 오환) ~ 요동의 부여 ~ 고구려 ~ 백제 ~ 반도의 가야/신라로 이어지는 기마 민족 계통의 문화이고 청동기 시대 고조선은 농업 문화였다. 문화도 바뀌도 국가도 바뀌었다. 그러나 이 둘의 유전자 족보는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가 철기 기마 문화를 배운 것이지 기마 민족이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마 문화가 있으면 기마 민족이다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만주부터는 유목을 안 하고 농업과 목축을 겸한다. 유목을 해야 기마민족이라 할 수 있다. 고조선 후손 고구려, 남하한 고조선과 섞인 마한/백제, 진나라 유민과 흉노계 등의 이민족이 섞인 진한/변한/신라/가야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고 한다. 지배자 가야 김씨와 신라 김씨는 같은 뿌리라고 한다. 편두는 흉노의 풍습인데 신라 가야에도 있었다고 하니까 같은 계통일 수 있다. 일본어는 아마도 한반도 남부 마한/백제의 언어적 영향을 받았고, 한국은 신라(흉노계)의 언어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우랄알타이어족(몽고어, 돌궐어, 만주어)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터키어(돌궐어)는 최근(돌궐의 서천시)에 서방으로 퍼진 언어라서 분포가 넓지만 한국어 일본어는 오랜 동안 반도와 섬에 고립되어 있었다. 한국어 일본어가 같은 어순에, 표현도 같고, 문법도 비슷한 것을 보면 분명 삼국 시대 공통의 영향을 받았을 것인데 기초 단어는 전혀 다르다. 일본어는 받침도 없고, 자음과 모음도 한국어와 다르다.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투르크계의 언어는 서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단어가 비슷하다. 같은 어족 중에 더 가까운 것들은 단어들이 매우 비슷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 정도면 사투리 아닌가? 일본어는 한반도 남부의 남방계 토종 언어(진한? 마한?)와 섞인 고조선 언어였을 것이다. 한국 남방계는 동남아계와 친척이기 때문에 성조를 쓰는 언어거나 인도네시아쪽처럼 받침이 약한 언어였을 수도 있다.

현재의 유전자 족보를 보면 만주의 북방 민족들이 중국 북부, 한국 북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지금 만주는 중국인들이 북상한 것이라 옛날 만주인과는 다르겠다. 옛날 만주인은 몽골인과 더 비슷했을 수도 있겠고 혼혈일 수도 있다. 중국도 북방인은 거의 흉노, 동호(오환/선비/거란), 예맥(부여/고구려), 숙신/말갈/여진(금나라/청나라) 등이 섞인 것인데 얘들 유전자 족보가 중국인, 한국인에 섞인 북방계와 거의 다를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상하게 이들의 언어는 족보가 다른 몽고, 시베리아 쪽과 함께 알타이어계였다. 추측하건데 아마도 서방 백인(청동기/철기/기마)들이 동방에 오면서 족보가 다른 몽고, 시베리아 계통과 중국 북방, 만주, 한반도 북부에 같은 언어적 영향을 준 것 같다. 족보는 다르나 모두 초원과 접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중국 서부 관중 땅도 같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 원주민이라는 묘족(몽족)과 한반도 남부인, 야요이인이 이들과 족보가 다르다. 묘족의 족보는 한국 남부 토종, 야요이인보다 좀 더 만주에 가깝다. 일단 족보는 그러한데 만주, 한반도, 일본의 언어적 특징은 중국이 아닌 초원의 영향을 받았다. 문법적으론 우랄알타이어족의 영향을 받았다. 묘족의 성조는 중국어에 남게 된 것 같다. 중국어와 동족이라는 시노티베트 어족의 티베트어는 성조가 없는데, 티베트에서 내려온 미얀마어는 있다. 중국 동남쪽 해안의 언어는 성조가 있다. 대만도 그쪽에서 건너 갔으니 성조가 있다. 동남아 언어(태국/베트남)도 원래 중국 남부가 본토라 성조가 있다. 한반도 남부 원주민과 일본,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폴리네시아로 퍼진 섬 사람들의 언어는 성조가 없다. 아무리 봐도 고대 민족의 영토는 지금과 엄청 달랐을 것 같다.

중국 서부 작은 땅의 화하족 중국이 중원에 넓게 살던 동이족 고조선을 북쪽으로, 중국 원주민이라는 묘족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원래 중국 남부인(베트남, 타이계, 대만, 크메르 등)이 동남아, 인도네시아 흑인 원주민(뉴기니 계통)을 밀어 내고,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뉴질랜드, 하와이, 사모아 등)까지 퍼졌다. 그래서 이 지역들에 흑인 닮은 황인들이 살고 있다. 비슷하게 고조선이 한반도 남부인을 밀어 내면서 섞이고, 한반도 남부인은 일본으로 밀려가서 조몬인을 밀어 내면서 섞인 야요이인이 된다. 나중에 삼국시대 유민들이 일본으로 또 밀려가서 지금의 일본인은 3가지 종족이 섞인 것이다. 일본 동북방/오키나와 열도 쪽의 원주민 조몬(아이누계) + 일본 서남방의 한반도 남부 이주민 야요이(반도계) + 고조선/삼국 시대 북방계 유민들(야마토/사무라이?)

  1. 일본 이즈모 지역 – 아마도 최초의 이주민(마한/진한)? 일본 최초 신사가 여기 있다.
  2. 일본 야마토 지역 – 교토(경도) 지역, 고분시대 가야계 + 백제계
  3. 일본 무사시 지역 – 도쿄(동경) 지역, 아마도 통일 전쟁 이후 신라계 + 고구려계

그러니까 현재의 한국인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시대의 만주인보다는 통일 신라 이후의 한반도의 고려, 조선을 통해 형성된 혼혈 민족이라고 봐야 더 정확할 것이다. 현재 민족이란 것이 족보를 보면 잡탕이고 인종도 혼혈이 되었지만 최소한 인종이 유사하고, 언어는 공통으로 사용해서 같은 민족이라고 부른다. 우리도 족보는 잡탕에 인종은 북방 남방 혼혈이지만 일단 언어가 이 때 통일 되었으니 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거에 같은 족보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언어가 달라졌으면 다른 민족이라고 봐야겠지. 미국처럼 서로 족보가 달라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혼혈이 되면 결국 하나의 민족이 되는 거지. 유럽의 민족이란 것도 중세 시대 국가들로부터 시작한 침략자 게르만/슬라브 혼혈인 것처럼. 슬라브 족은 너무 넓은 곳에 퍼져 있어 지역마다 인종도 혼혈로 약간 다르고 언어가 같아도 서로 다른 나라를 건국해서 싸운다.


6. 우리의 먼 친척들?


고구려 멸망 후에 중국 쪽 고구려인들은 중국에 붙고, 중앙 고구려인은 잡혀가고, 반도 고구려인은 통일 신라로 붙고, 만주 서부 고구려인은 몽고로 피난 가고, 동북 고구려인은 발해를 건국했다. 이 중에서 몽고로 간 사람들을 케레이드라고 한다. 몽고엔 여러 인종의 여러 부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케레이드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칭기즈칸(몽고 동부)의 몽고 원정을 따라 서쪽 카자흐스탄으로 타타르족(몽고 서부)과 함께 이주를 해서 혼혈이 된 것으로 보인다. 케레이드와 타타르는 칭기즈칸과 싸운 경력이 있다. 그래서 몽고 땅을 버리고 떠난 거란다. 언어적으로는 우리와 달라졌을 것인데 그들 역사 기억으로는 자신들이 고구려와 관계있는 것으로 나온다. 카자흐스탄 유전자 족보를 비교하면 몽고계와 북중국/만주/한반도 북방계 족보가 섞여있다. 카자흐스탄 사람 일부가 한국인과 두개골의 특징이 비슷한 것도 설명이 된다.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단다.

인터넷을 보니 멸망한 발해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아즈텍 문명(멕시코)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언어와 문화적 풍습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유전자 족보는 북중국, 만주, 한국계와 비슷해야 옳다. 조사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런데 지금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인디언 유전자 족보는 동양인보다는 유럽 백인들과 더 친척으로 나온다. 인종은 황인종에 아주 가깝지만 말이다. 현재 멕시코인은 스페인 남자 백인들과 혼혈이 되어 메스티조(혼혈아/잡종)라 부른다. 그런데 발해인 대부분은 고구려인이 아닌 숙신/말갈/여진 사람들이다. (서로 같은 혈통일 수도 있다.) 나중에 금나라/청나라를 건국하는 애들 말이지. 그리고 마야, 잉카 문명은 발해 이전에 이미 시작한 문명으로 나온다. 아즈텍은 북쪽에서 내려온 원주민이 마야 문명을 이어 받아 나중에 생긴다. 족보나 언어로 봐도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유사한 문화적 흔적은 있다. 멕시코 부계 족보가 남아 있고 그게 몽골계와 같은 혈통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 발해(698년~926년), 아즈텍(1200년경~)

만주가 몽고와 접하고 있고 몽고인과 같은 혈통이 북미의 이누이트(에스키모)이고, 북미 인디언 중에서 서부 쪽(멕시코 바로 위가 아파치족)은 얘들과 같은 뿌리이다. 그래서 같은 문화로 연결될 수는 있는데 멕시코는 너무 남쪽이잖아? 북미 서부 인디언 중에 일부가 멕시코로 남하했다면 모르지만, 그래도 혈통은 몽골계에 속하지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아파치족 근처 서부 나바호족 언어는 영화 "윈드 토커"에서 보듯이 포합어라 암호와 비슷하다. 발해인들이 이런 원시적인 언어를 쓸 리가 없지 않나? 현재 만주인은 중국인들과 혼혈이라 원래 만주인이 몽골계 쪽에 가까운지 북중국, 한국인과 가까웠는지 알 수는 없다. 멕시코 남자들도 혼혈이라서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는지 북에서 내려온 몽골계 이누이트와 같은 혈통이었는지 알 수 없다. 이들 모두 신석기 시대 이동을 한 걸로 보이는데 철기 시대 문자를 아는 발해 사람들이 이동했다면 포합어나 신석기 쓰고 있겠냐?

인터넷을 보니 우리를 유대교의 셈족으로 연결시키려는 것도 보이는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3아들 중 함족은 북아프리카에 퍼진 인종이고, 셈족은 중동에 남은 아랍계 인종이고, 유럽으로 간 야벳은 지중해 인종으로 나온다. 아프리카 흑인은 이집트나 에티오피아를 통해 알았을 것이다. 아마 처음엔 얘들을 함족으로 알았을 것이다. 북유럽 백인 계통(아리안계)은 히타이트나 바다 민족, 페르시아 등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동양 황인은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언급도 안 한다. 유대교는 아라비아 반도가 근거지인 아랍계 인종(셈족)에 대한 전설과 역사만 말한다. 그리고 이 노아의 홍수 신화도 수메르 ~ 바빌론/아시리아 신화에서 베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신화는 초원 민족과 접한 수메르 민족의 신화라는 말이다. 이게 유대식으로 각색되어 중동 지역의 역사로 기록된 것이다. 이런 창조 신화는 초원을 통해 여러 민족이 공유했기 때문에 누가 오리지널인지 모른다. 확실한 건 유대교의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다.

남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도 바다는 육지를 덮을 수가 없다. 고로 대홍수는 산이 보이지 않는 어떤 넓은 평원에서 발생한 국지적인 홍수였다. 이런 지역에선 물이 깊지 않아도 땅을 덮고 망망대해처럼 산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중국 등 평원에서 홍수가 나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집트는 매년 홍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홍수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대륙의 내륙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이고 비보다는 빙하기 끝에 빠른 온도 상승으로 얼음이 녹아 평지로 마구 흘러들어간 것 같다.
후보지는 파미르 고원 동쪽 타림 분지나 서쪽 카자흐스탄 등 스탄 국가 쪽 평원일 것 같다. 거기선 물이 바다로 나갈 수가 없어 내해나 호수를 만들게 된다. 이런 현상은 상당히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사람들은 질퍽한 평지보단 산지에서 살았을 것으로 보이며 산맥을 따라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사막인 타림분지가 한 때는 농사짓기 좋은 에덴동산이었다. 물이 점차 마르면서 늪지에서 농지가 되고 사막이 된 것이겠다. 아랄해가 빙하로부터 나오는 물 공급이 없어 점점 말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바다가 육지로 밀고 들어온 곳이 있는데 그게 황해, 남해, 동중국해, 남중국해, 동남아 섬들 사이 평지이다. 동남아 쪽은 빙하기 때 천국이었을 건데 여기를 순다 랜드라고 부르더라. 뮤 대륙이나 아틀란티스 대륙 전설과 비슷한 것이다. 동시에 그 평지로 흘러들던 대규모 강들(황하, 양자, 요하, 압록, 한강, 메콩 등)도 홍수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가 홍수 전설의 발원지일 수도 있다. 솔직히 빙하기 말의 사방을 둘러 봐도 산이 안 보이는 평지의 강 하류나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홍수 아니면 바닷물에 잠기는 걸 목격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7. 고대사는 판타지 소설?


답도 없는 고대사 그만 하자.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료도 거의 없고, 자료의 내용도 역사라기보다는 전설 수준으로 서로 다른 내용으로 횡설수설하니 답이 나오겠나? 인생 낭비겠지. 한국은 해방 후에 북한은 빨갱이가 남한은 친일파(쪽발이 하인들)가 장악한 나라이기 때문에 친일 사학자가 역사 학과를 장악 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친일 사학자이기 때문에 고대사 연구를 제대로 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자료가 거의 없고 서로 횡설수설이기 때문에 공부 해도 답이 안 나올 거 같다. (그래도 고대사는 중국쪽의 자료와 유적을 반영해 넣어야 한다. 너무 이상한 게 많다. 어차피 피차 증거 부족이면 유리하게 만들면 되잖아? 중국 일본 모두 그러한데 왜 우린 안 하냐?) 고대사는 지금 우리에게 아무 도움 안 되는 고대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현대 그리스인/이탈리아인들에게 고조선 시대의 그리스/로마가 아무 도움 안 되는 것처럼) 현재의 정치 경제 얘기를 해도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꼴통 보수들에게 고대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정치가 밥 먹여 주냐고 하는 꼴통 보수들에게 고대사가 밥 먹여 준다는 게 통하겠나?

신석기 → 청동기 → 철기 → 화기 거치는 동안 민족이 안 바뀐 경우가 있던가?
현재 인류 부계 족보 대부분은 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에 원주민을 대체한 족보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계 족보는 화기 시대에 유럽 부계 족보로 대체 되었다.

삼국사기가 한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우리 역사엔 고조선, 부여, 발해, 삼한에 대한 다른 기록이 거의 없다. (태종 때, 일제 시대 책들을 다 불태웠다고 한다. 어쩐지 기록이 너무 없더라.)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이 나타나는 때는 언제일까? 몽고 침략 후에 만든 삼국유사인데 중국 기록에서 베낀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거친 후에 나온 규원사화에서도 나오는데 역시 중국 기록을 베껴 만든 책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제시대에도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환단고기다. 이 시대는 중국 자료 구하기도 쉽고, 유럽의 기독교 영향도 있어서 유대 경전도 참고하고, 세계 역사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이 외국에 심각하게 당한 후에 유대인처럼 족보와 역사를 고쳐서라도 민족의 단합(역사 깊은 단일 민족?)을 이루고자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중국 전설의 치우와 중국 기록의 고조선이 다시 한국 역사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삼국사기 1145년 (고조선, 가야, 동예, 옥저, 삼한, 발해가 없단다?)
  • 고몽전쟁 1231년~1257년
  • 삼국유사 1281년 (고조선/단군 등장)
  • 임진왜란 1592년~1598년
  • 정묘호란 1627년
  • 병자호란 1636년~1637년
  • 규원사화 1675년
  • 일제강점 1910년~1945년
  • 환단고기 1911년 (1979년 출판)

허나 고조선은 동양 문명의 조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조선 피를 안 받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반도/일본열도에서는 중국에는 안 나오는 고조선 유물이 분명하게 나온다. 중국 동이족과 같은 유물도 분명하게 나온다. 우리 마지막 왕조를 명나라가 조선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중국이 우릴 고조선 후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이 우리를 보고 고조선, 동이족 후손이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 기록에도 우리가 그 후손이라고 나오지 않는가? 고조선을 부정하면 우린 철기 시대에나 철기를 가진 북방 이주민들에 의해 나라를 건국한 게 된다. 만주는 청동기 시대인데 그 바로 밑의 반도는 신석기 시대라는 게 말이 되는가? 나오는 청동기 유물이 만주와 동일하다. 철기 기마 유물도 만주와 동일하다. 그래서 고대에는 만주 쪽 사람들의 지배를 받았다고 본다.

후손이 살기 위해 조상 족보도 팔고, 남의 조상 족보도 사는 일이 조선 후기에 있었는데, 중국의 동북 공정이나 한국/일본의 역사 왜곡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우리도 해방 후에 친일파들이 각계 각층을 장악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살려면 역사 왜곡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우리는 고조선, 발해, 가야를 밀어 내고 있고, 중국은 고조선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일본은 가야를 가지고 싶어 한다. 만주 여러 부족은 자신들을 고구려의 후예라 자칭하기도 했으니, 정확히 자기 조상을 알고 역사를 아는 나라가 있기나 하겠는가? 그러니 무조건 우기기 하는 거잖아?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그런데 말이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북한의 김씨 세습 독재가 무너지고, 남한의 골빈 친일 독재 잔당이 멸망하며, 친일 극우 꼴통들이 깨달음을 얻어 개돼지에서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 너무 먼 과거는 안드로메다 얘기처럼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이 언제쯤 민주복지(자유평등), 사회민주(평등자유) 국가가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지상 낙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까?

황당 고기 = 전승 + 소실 + 창작 = 유대 경전(구약)과 비슷

  1. 전승역사 = 다른 역사책을 베꼈기 때문에 증명 가능한 역사
  2. 소실역사 = 베낀 역사책이 사라져서 증명 불가능한 진짜 역사
  3. 창작역사 = 황당 고기 작가가 창작한 가짜 역사 또는 가설
  4. 전승신화 = 역사라고 하기엔 거리가 먼 종교 신화

황당 고기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며 위의 4개를 구분해 내는 것이다. 2번과 3번은 영원히 구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거기에 빠져 살 거냐? 어떻게 삼국유사나 규원사화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일제 시대 툭 튀어 나오냐? 그 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다가. 진짜 황당고기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읽어 보자. 기록 중에 진짜도 있을 것이니까. 강단 사학에서 일본 서기를 참고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강단 사학에서 거짓말 한다는 걸 알고 충격 먹었다.
환단고기와 강단사학 둘 중에 뭘 믿어도 이상한 놈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