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택 창문을 보면 좀 답답하다. 어울리지 않게 설치한 방범창과 방충망 때문에 유리창 청소를 못 한다. 청소를 하려면 탈부착이 쉬워야 하는데 방충망과 방범창은 탈부착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또한 외부 빛을 차단해야 잠이 잘 오는 사람도 있을 건데 커튼으로는 완전히 차단할 수가 없다. 커튼은 완전히 빛을 차단하지 않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용도로 보인다. 도대체 넓고 큰 커튼을 왜 설치하는 거야?
그래서 창문의 역할을 3가지 나누어 3중으로 하면 어떨까?
- 방범창 + 방충망 : 도둑과 벌레를 막는 역할
- 유리창 : 바람은 막지만 밖은 볼 수 있는 역할
- 차광창 : 빛까지 차단할 수 있는 차광막 역할
이 3가지 창문은 내부에서 탈부착이 가능해서 청소하거나 이사할 때 짐을 넣고 빼기 편리하다. 보온과 방음을 위해서 2중 창문을 하는데 차광창이 그 역할도 겸할 수 있다. 창이 많이 겹치면 보온과 방음에 무조건 좋다. 창틀을 새로 교체한다면 이런 기능으로 업체에서 설계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한 업체에서 모두 다 설치하는 게 좋겠지. 유리창 따로, 방범창 따로, 방충망 따로, 커튼/차광막 따로 설치하니 번거롭다.
한국 전쟁이란?
1. 남북 모두 통일을 원했으니 통일 전쟁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건 미국. 통일 한국의 정부가 친미 성향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련/중공은 통일 정부 수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통일 정부에서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여운형 암살, 통일 정부 수립 추진하던 김구 암살. 누가 했을까?
2. 북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니 북한이 먼저 공격할 거란 건 당연했다.
일본의 산업 시설은 북한에 많았고 T-34 전차도 북한 공장에서 생산한 것들이었다. 독립 운동 하다 국공 내전에 용병 형식으로 참전한 실전 경험이 있는 군대도 있었다. 누가 봐도 북한이 남한보다 부강했다.
3. 통일 전쟁이 터지면 선전 포고 없이 기습을 하는 건 당연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이 바다 건너 참전하기 전에 끝내려면 기습과 속전속결이 당연했다. 북한이 좀 더 진격 속도를 빠르게 했다면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통일이 안 된 남한이 더 잘 되어 웃긴 꼴이 되었지만. 남한이 통일 전쟁을 시작한다고 해도 역시 소련/중공의 개입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4.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총 맞아 죽기보단 추위, 기아, 질병으로 죽을 확률이 더 높단다. 거기에 민간인 학살이 추가 된다. 빨갱이 잡아 죽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재판도 증거도 없이 총살하여 파묻다니 정말 제정신인가? 빨갱이가 그렇게 무서웠어?
5. 북한군(인민군)보다 남한군(국방군)이 학살을 더 많이 했다.
북한은 인민 해방 명분 때문에 함부로 못 죽이고 골라서 죽였는데, 남한의 친일파 경찰/장교 출신들은 빨갱이 공포증이 있어 무차별 학살을 했다. 공산당이 제일 먼저 처리하는 것들이 친일파(당시 장교/경찰/공무원/교사)들이었으니까. 행방불명 10%, 북한군이 학살 10%, 남한군이 학살 80%로 보면 대충 비슷하다.
6. 남한보다 북한의 피해가 더 컸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북한군은 거의 전멸 상태, 1.4 후퇴 때 북한군 증강을 막기 위해 북한 청년들을 징집하여 끌고 내려오다 역시 부정부패로 보급을 제대로 안 해서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자가 많았다. 우파 = 부정부패, 공식이다. 미국의 융단 폭격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7. 전후 복구는 소련/중공의 도움으로 북한이 더 빨랐다.
미국의 지원도 있었으나 남한은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로 전후 복구가 느렸다. 80년대 이전까진 여전히 북한이 남한보다 더 부강했다. 60/70년대 박정희 정부 경제 성장에도 북한보단 못 했단 얘기다. 과연 박정희 경제 성장이 특이한 현상일까? 박정희 없는 나라도 경제 성장 잘 하던데?
이런 전쟁이 냉전 시대 첫 전쟁인 한국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더라. 베트남 역사와 전쟁은 한국과 배우 비슷한 패턴이니 참고하면 될 것이다. 과연 그 시대 우파들이 공산당 욕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짓이 똑같은데?